이진숙 미술에세이, 문학+그림으로 '공감'을 말하다

신간 <롤리타는 없다: 그림과 문학으로 깨우는 공감의 인문학> 1, 2

셰익스피어, 피츠제럴드, 뭉크, 마티스 같은 거장들은 예술 형식에만 갇혀 있지 않고 작품 속에 시공간을 초월하는 진리를 담았다. 이진숙 미술평론가의 에세이 <롤리타는 없다>는 그들의 살아 있는 촉각으로 건져 올린 혜안을 통해 새로운 공감의 인문학을 연다. 특히 문학과 미술이 어떻게 영항을 주고받았는지 들여다본다.


공동체가 모두 행복해야 한다는 걸 깨닫기 위해서는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 이 섬세한 공감의 촉수를 가장 잘 벼리는 사림이 바로 예술가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창조한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고전이 된 것은 모두 그 바탕에 탄탄한 공감 능력이 깔려 있지 않고는 불가능했다.

말라르메의 시 '목신의 오후'는 드뷔시의 음악으로, 니진스키의 발레로, 마티스의 그림으로 새롭게 탄생하면서 예술의 발원지가 되었다. 한국 근현대 화가로서 최고가를 기록하고 있는 김환기는 김광섭의 시 '저녁에'에서 그림의 제목을 가져왔다. 이처럼 문학과 미술을 넘나들며 작가들이 교류했던 것은 시대정신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도 인간과 삶에 대한 거장들의 통찰을 이해하고 나와 동시대의 타인과 공감해야 한다. '길가메시'는 "영원히 살 것처럼 권력을 휘두르는 오만한 자에게 보내는 삶의 경고"이며, 화가 에드워드 호퍼는 "삶에 대해 끊임없이 희망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랭보와 벨라스케스를 통해 "나만의 마법으로 삶을 헤쳐 나아가는 것을 배우고, 톨스토이를 통해 "삶을 살아가는 내적인 태도를 바꾸고", 루소와 체호프를 통해 "지속 가능한 사랑의 기술"을 깨달아야 한다. 단테, 피츠제럴드, 로댕을 통해 "지옥을 모면하는 삶의 기술"과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다양한 기술"을, 오스카 와일드를 통해 "자신에 대한 성찰과 타인에 대한 연민"의 필요성을 깨닫고, 프루스트를 통해 "무의미 속에서 흩어진 삶을 구원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책 속으로

앙리 마티스, '생의 기쁨' (1906)
마티스의 '생의 기쁨'은 두 편의 시, 보들레르의 '여행으로의 초대'와 말라르메의 '목신의 오후'에서 영감을 받았다. 마티스는 보들레르의 시 '여행으로의 초대'의 한 대목 "그곳에서 모든 것은 정연한 아름다움/ 화사함과 고요 그리고 관능"이라는 시구에서 제목을 딴 '화사함, 고요, 관능'(1904)을 그렸다. 보들레르의 시는 연인에게 현실의 때묻은 삶에서 벗어나 이상 세계로 달아나자는 달콤한 속삭임이자 약속이다. 그 세계를 채우는 자족적인 감정의 이름이 '화사함, 고요, 관응'이었다. 이 세 단어는 현실 세계의 여러 풍파를 피해서 도달한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느끼고 싶은 유토피아의 감각이다. '생의 기쁨'에서는 그러한 감정이 그대로 유지되는 가운데 마티스는 한걸음 더 나아가 말라르메에게로 다가간다.-1권 '말라르메의 <목신의 오후> 마티스의 <생의 기쁨>' 174쪽

자코메티, '걸어가는 남자'(1960)
작업을 함께 하면서 이십년 지기의 두 예술가는 무대 위으 고고와 디디처럼 어떤 나무여야 하는지에 관해 결론 없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베케트는 자신의 문학에 관하여 "표현할 길이 없으며, 표현하고자 한느 요구가 없으며, 표현할 의미가 전혀 없는 표현"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어쩌면 실패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성공하는 방법은 실패 자체를 작품화하는 것이리라.
(중략)
"나를 만났다고 말해라."라는 디디의 주문처럼 인물들은 인간일 수 있는 최소의 조건만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자코메티는 고전 조각의 인물상에서 기대할 수 있는 삶의 충만함과 풍요로움을 과감히 제거해 나갔다. 마침내 그가 드러낸 것은 인체의 골격이 아니라 삶의 지리멸렬함과 강퍅함, 구제할 길 없는 고독이었다.
-2권 168~170쪽 '베게터의 <고도를 기다리며>와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남자>'


이진숙 지음 | 민음사 | 1권 272쪽, 2권 292쪽 | 각 권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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