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가 모두 행복해야 한다는 걸 깨닫기 위해서는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 이 섬세한 공감의 촉수를 가장 잘 벼리는 사림이 바로 예술가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창조한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고전이 된 것은 모두 그 바탕에 탄탄한 공감 능력이 깔려 있지 않고는 불가능했다.
말라르메의 시 '목신의 오후'는 드뷔시의 음악으로, 니진스키의 발레로, 마티스의 그림으로 새롭게 탄생하면서 예술의 발원지가 되었다. 한국 근현대 화가로서 최고가를 기록하고 있는 김환기는 김광섭의 시 '저녁에'에서 그림의 제목을 가져왔다. 이처럼 문학과 미술을 넘나들며 작가들이 교류했던 것은 시대정신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도 인간과 삶에 대한 거장들의 통찰을 이해하고 나와 동시대의 타인과 공감해야 한다. '길가메시'는 "영원히 살 것처럼 권력을 휘두르는 오만한 자에게 보내는 삶의 경고"이며, 화가 에드워드 호퍼는 "삶에 대해 끊임없이 희망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랭보와 벨라스케스를 통해 "나만의 마법으로 삶을 헤쳐 나아가는 것을 배우고, 톨스토이를 통해 "삶을 살아가는 내적인 태도를 바꾸고", 루소와 체호프를 통해 "지속 가능한 사랑의 기술"을 깨달아야 한다. 단테, 피츠제럴드, 로댕을 통해 "지옥을 모면하는 삶의 기술"과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다양한 기술"을, 오스카 와일드를 통해 "자신에 대한 성찰과 타인에 대한 연민"의 필요성을 깨닫고, 프루스트를 통해 "무의미 속에서 흩어진 삶을 구원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책 속으로
(중략)
"나를 만났다고 말해라."라는 디디의 주문처럼 인물들은 인간일 수 있는 최소의 조건만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자코메티는 고전 조각의 인물상에서 기대할 수 있는 삶의 충만함과 풍요로움을 과감히 제거해 나갔다. 마침내 그가 드러낸 것은 인체의 골격이 아니라 삶의 지리멸렬함과 강퍅함, 구제할 길 없는 고독이었다.
-2권 168~170쪽 '베게터의 <고도를 기다리며>와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남자>'
이진숙 지음 | 민음사 | 1권 272쪽, 2권 292쪽 | 각 권 1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