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 사회학과 이나영 교수는 "법은 국민을 보호하고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라고 만든 것"이라며 "(만약 헌재가 국민의 뜻에 반하는 탄핵 기각 결정을 내리면) 영원히 역사의 죄인으로 남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리 사회는 법을 만들면 '법 프레임'에 갇혀서 그것에 따라 국민을 재단합니다. 그런데 그 법 프레임도 결국 국민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헌재에서는 분명하게 인지할 필요가 있어요. 사실 이 정국에서 정치인들이 중간중간 정치 프레임에 갇혀 엉뚱한 짓을 할 때마다 국민들이 계속 질타를 했잖아요. 헌재 역시 굉장히 협소한 법 프레임으로 이 문제를 보려고 하면 역풍을 맞을 겁니다."
이 교수는 대통령 박근혜의 결격 사유로 '역사적으로 민주주의를 완전히 퇴행시킨 것"을 꼽았다.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공고화 되는 과정에서 굉장히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그 제도가 작동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결국 광장에 운집한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데는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체제 개혁에 대한 열망이 담겨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정치권은 단순히 대통령 하야나 퇴진에 집중했어요. 야당은 다음 정권을 잡는 것을 목적으로 갖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시민들은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체제 개혁에 대한 열망이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어찌 보면 지난 9년간 이어져 온 보수정권의 역설이기도 해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민주화의 분위기를 체험했던 국민들은 그것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긴 점이 있어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설 수 있었던 데는 사람이 바뀐다고 해서 제도가 이렇게까지 후퇴할 것이라고는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는 "지난 9년, 특히 박근혜 정권을 통해 국민들은 민주주의라는 게 현실적으로 지켜 나가지 않으면 사라지는 이상과도 같다는 점을 깨달아 가고 있다"고 봤다.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을 밝히는 국정조사를 통해 본 야당 의원들의 무능력함을 비롯해 지금 정치권의 행태에 국민들은 상당히 실망하고 있습니다. '유령'은 사라진 것 같지만 현실에 여전히 영향을 끼치는 것을 일컫는데, 가만히 돌이켜보면 식민지 시대의 유령들, 박정희·전두환 독재체제의 유령들, 그리고 심지어는 그들과 맞서 싸우면서 같이 괴물이 됐던 사람들까지 좀비처럼 마구 얽히고설켜 아직까지도 정국을 휘졌고 있는 것에 대한 실망감이 너무 큰 탓이겠죠."
◇ "시민들은 구태에 분노하고 있다…탄핵은 끝이 아니라 시작"
"지난주(3일 전국적으로 232만 명이 운집한 제6차 촛불집회)에 많은 시민들이 나왔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촛불에 불을 댕긴 건 친박도 비박도 아닌 야당의 박지원(국민의당 원내대표)이었어요. 결국 국민들은 '눈치를 봐야 할 상대는 친박도, 비박도 아닌 국민'이라는 것을 계속 보여주고 있는 거죠. 그 열망을 담아 제도로 만들어낼 책임은 정치인들에게 있습니다. 그것마저 국민에게 떠넘기면 안 되겠죠."
그는 "탄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앞으로 벌어질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에 대해서도 공론장에서 논의한 결과를 국민들이 위에 요구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벌써부터 헌재 재판관들이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를 알리는 글들이 SNS에 올라오고 있잖아요. 시민들이 재판관들과 김기춘, 박근혜와의 인연을 하나하나 캐고 있는 거죠. 시민들이 헌재에 기대감을 갖고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탄핵의 공이) 헌재로 넘어갔더라도 시민 동력은 떨어지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국민들은 헌재를 움직일 힘이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어요."
이러한 성숙한 시민의식이 앞서 언급했던 '유령'의 존재를 청산하는 힘이 될 것이라고 이 교수는 내다봤다.
"박정희의 유령을 청산해야 한다는 우리의 의지는 꾸준히 있어 왔어요. 다만 어떻게 청산해야 할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딸 박근혜가 스스로 그 유령을 안고 자폭하는 바람에 역설적으로 역사적 청산이 이뤄진 겁니다. 김기춘으로 대표되는 박정희 좀비들도 그 민낯을 드러내면서 철거되고 있잖아요."
그는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로 대표되는, 1987년 6월항쟁을 이끈 운동권 세대는 당분간 파워집단이 될 것"이라며 "이분들이 좀비 같은 존재로 남지 않으려면 계속해서 스스로를 일신해야만 한다"고 당부했다.
"그 경고를 언론에서 강하게 줘야 해요. 지금 시민들은 과거의 고리타분한 위계질서 강화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어요. 우상호 원내대표가 한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광장 정치' '의회 정치'를 구분하는 바람에 욕을 많이 먹었잖아요.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나이가 어떻게 되냐'고 물은 것도 단적인 예입니다. 위계질서에 따라 정렬시키지 않더라도 삼성 등 재벌의 잘못을 충분히 지적할 수 있어요. 시민들은 이러한 구태에 분노하고 있는 거예요."
◇ "창은 이미 열렸다…인식의 변화,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
"가치 안에 위계질서를 세우고 자기가 가장 옳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만이 가장 정당한 대의라는 것, 그 외에는 사소한 것이니 배제하고 무시해도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행태는 곧 민주주의의 걸림돌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지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 세대가 아직은 대한민국의 허리로 있는데, 광장에 나선 시민들이 이들을 어르고 달래고 때로는 저항하면서 끌고 가는 양상입니다. 결국 시민들이 '단순한 구호로서의 다양성이 아니라, 그 다양성 안에 차별이 있고 위계질서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성찰하고 다른 방식으로 실천하라'고 계속해서 요구하고 있는 거죠."
그는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는 1987년부터 시작됐다고 보는데, 서구가 200~300년간의 실험을 통해 제도화한 것에 비하면 30년으로 굉장히 짧다"며 "민주주의는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만들어져 가는 것이라는 점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참 대단하다"고 평했다.
"그 30년 과정 안에서 민주주의가 무엇이다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실현시키고자 하는 열망이 대단한 거죠. 오히려 차기 정권으로 이 열망을 담아내지 못하는 정권이 들어선다 하더라도, 광장에 나왔던 사람들의 의식과 무의식에 각인되고 체현된 인식 덕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계속 발전할 거라고 봅니다. 지금 당장 제도적으로 많이 나아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 지금 광장에 나온 20, 30대 젊은이들이 우리 사회의 허리가 될 때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는 확실히 자리 잡힐 겁니다."
이 교수는 특히 '하나이면서 여럿이고 여럿이면서도 하나'로 표현되는, 개인에 기초한 다양성을 품은 광장의 풍경에 주목했다.
"지금의 20대 청년층은 특정 소수자 집단에 대한 차별과 멸시를 강하게 비판합니다. 심지어 동물에게도 인격이 있다고 말하니까요. 우리 윗세대는 그것이 왜 문제인지 몰랐고, 알았어도 소수의 이야기라는 이유로 외면했죠. 그것이 단순하게 생물학적으로 구분되는 여성 남성이나 장애 비장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 사람들이 얘기하고 있어요. 그것을 이미 인지하고 구현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생겼습니다. 결국 인식이 변한 건데, 이제 다시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창은 이미 열려 버렸으니까요. 이 사람들이 이끌 대한민국은 훨씬 밝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