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으로 매출이 반 토막 나는 등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나온 판결이라서 꽃집 업주들의 이마에 주름만 깊게 파이고 있다.
제주지법 형사4단독 성언주 부장판사는 최근 국화 등을 재활용해 만든 근조 화환을 판매한 혐의(사기)로 기소된 꽃집 주인 A(53·여)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2014년 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제주시의 한 장례식장에서 사용한 근조 화환을 매월 100개가량 수거해 국화와 지지대, 조화 등을 재활용해 722차례에 걸쳐 4천489만원 어치를 판매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새 근조 화환과 재활용 근조 화환을 구분해 가격을 싸게 판매했고, 구매자 상당수가 재활용 사실을 알고도 저렴한 가격에 끌려 재활용 근조 화환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 부장판사는 "피고인에게 신의칙에 비춰 재활용 화환 제작·판매 사실을 고지할 법률상 의무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고, 피고인이 피해자들을 속였다는 점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무죄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 3월 대전에서도 비슷한 판결이 나왔다.
대전지법 형사 9단독 이주연 판사가 장례식장 빈소에 유족이 놓고 간 근조 화환을 수거한 뒤 재활용한 혐의(사기)로 기소된 B씨 등 2명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또 같은 혐의로 기소된 C씨 등 12명에 대해서는 공소를 기각했다.
이들은 일부 시든 국화꽃은 버리고 싱싱한 국화꽃은 물에 담가 보관한 뒤 소매업체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장례식장에서 수거한 국화꽃을 재사용해 제작한 근조 화환을 마치 새 국화꽃을 사용해 제작한 것처럼 배송해 판매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이들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이런 방법으로 최소 2천240만원, 최대 3억2천930만원에 이르는 매출을 올렸다.
재판부는 "국화꽃을 재활용했다고 해서 곧바로 국화꽃의 신선도 및 품질이 떨어진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피고인들이 국화 재활용 사실을 고지할 법률상 의무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지난 9월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매출이 반 토막 난 데다 설상가상으로 근조 화환 재활용 업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판결이 잇달아 나오면서 화훼업계는 "생존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라며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실제로 '청탁금지법'에서 사교나 의례 목적으로 5만원 이하의 선물 제공은 허용하고 있지만, 시민들이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으려고 화훼류 선물 자체를 기피하면서 매출이 뚝 떨어진 실정이다.
지난해 기준 경기 용인시 관내 270개 화훼농가가 84.6㏊에서 1천744만 본의 꽃과 난, 관상용 나무를 생산해 252억8천만 원의 매출액을 올렸는데, 청탁금지법 법 시행 이후 화훼 판매량이 30% 정도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aT 화훼공판장에 따르면 지난 10월 1일부터 24일까지 화훼 거래물량은 전년 동기 대비 22%가량 줄어든 196만9천 속으로 조사됐다. 전년 동기 대비 절화류 -14%, 난류 -20%, 관엽 -18% 등으로 모든 화훼류가 거래량이 감소했다.
한국화원협회 이승희 사무처장은 "청탁금지법 시행 이전에도 '공무원 행동 강령 지침' 등 때문에 화훼업계는 원래 어려웠다"며 "법이 시행되면서 꽃집 매출은 반 토막이 났고, 화훼산업은 초토화되기 직전"이라고 하소연했다.
이 사무처장은 "속칭 '재탕업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해 면죄부를 준다면 이젠 꽃집과 화훼농가는 살아갈 힘이 없어진다"며 "가뜩이나 어려운 화훼업계의 생존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화훼 관련 진흥·육성법을 만들면서 그 안에 '재탕'을 규제하고 투명화시키자는 의견을 내기는 했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며 "어려움을 겪는 화훼업계를 위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