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을 걸어가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터널은 파블로 네루다의 시귀처럼 외로운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터널은 생각보다 길고 힘들고 무서운 곳이었다. 외로움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글은 길을 닮았다. 직접 걸어보고 써야 글이 살아난다. '나는 터널처럼 외롭다'면서 네루다가 스무살 무렵에 쓴 싯귀가 젊은 날의 치기처럼 여겨졌다. 외롭긴 뭐가 외로워! 나는 광화문 광장으로 가고 있는데! 터널을 지나면 광화문 광장이 나온다는 생각을 하니 용기가 생겼다.
희망은 자기기만일 뿐이다. 우리는 지금 용기가 필요하다. 그동안 우리는 부질없는 희망 앞에서 좌절하고 또 좌절했다. 이제는 용기를 가지고 가야 한다. 진눈깨비가 내려 손발이 얼어붙었지만 이 무섭고 긴 터널을 반드시 걸어서 지나가야만 된다고 속으로 되뇌었다.
터널을 지나니 함성소리가 들린다. 잠시 멈추어 섰다. 시민들이 가족단위로 걸어가고 있었다. 광화문 광장. 차벽이 꽃벽으로 변하고, 추운 날씨에 빵을 뜯어가면서 시민들이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촛불이 바람에 꺼지면 옆 사람의 촛불에 다시 불을 옮겨가면서 시민들은 여기저기로 행진했다. 울컥했다. 막상 터널을 지나 뒤돌아보니 터널이 외로워 보였다.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글은 조용한 함성이다. 글쓰기는 세상에서 사라지고 자기 자신에게서 사라져, 가장 조용한 상태에서 세상과 자기 자신을 문학적 구상의 소재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격한 문장이라도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평정심을 유지할 수가 없어 힘들다. 자꾸 울화가 치밀어 원고가 흔들린다.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을 생각하니 원고에서 피눈물이 난다.
시인은 사적으로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이 생기면 임진강에 가곤 한다. 강물이 흐르는 모습을 보면 자잘한 인간관계에서 빚어지는 분노는 용서가 된다. 그래 오죽하면 네가 나에게 그렇게 행동했을까? 너도 살기가 힘들었구나 하면서 눈물 흘리면 된다. 하지만 국민에 대한 권력자의 부정행위가 엄정한 심판을 받지 못한다면 국가는 무너진다. 항일저항기 임시정부시절부터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 김구 선생, 안중근 장군을 비롯한 얼마나 많은 거룩한 영혼들의 희생이 있었던가? 그런데 우리나라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단 말인가! 이 행진이 무너진 우리들의 마음 길을 열어주고 고난을 딛고 나갈 디딤돌이 되기를 기원한다.
요즘엔 시위관련 TV 뉴스를 볼 때 음소거를 하고 자막만 본다. '자막' 만으로도 뉴스는 충분히 크게 들리기 때문이다. 지금 뉴스의 발원지인 광화문에 울려 퍼지는 저 우렁찬 함성은 전 국민의 마음에 비하면 모기소리와 같이 들린다. 이 순간 비록 여기에는 오지 않았지만, 전국 방방곡곡에서 먹고 살기 힘든 국민들이 분노에 찬 함성을 내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 광화문 시위대 목소리 뒤에서 울려퍼지는 더 큰 목소리를 정권은 들어야 한다. 이 함성소리가 고집불통 벽을 밀어내고 있다.
이것은 전조일 따름이다. 푸른 지붕 아래에서 아직도 불통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대통령의 모습을 생각한다. 도대체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 선거의 여왕이여. 지금 당장 선거 유세를 하듯, 거리로 나와 당신에게 투표한 사람들의 손을 잡아라. 저들이 비에 젖은 성냥팔이 소녀처럼 떨고 있는데 당신은 도대체 거기에서 뭘 하고 있느냐! 저기 당신에게 희망을 걸었고, 당신을 사랑한 사람들의 무너진 마음자리를 보아라. 개돼지와 같은 간신배들의 손아귀에서 제발 빠져 나와라. 그것마저도 최순실에게 보고를 해야 하는가? 검찰은 잠깐 최순실을 청와대로 보내주면 어떨까? 더 이상 이런 농담을 시인의 입에서 나오지 말게 하라. 제발 서정시인을 저항시인으로 만들지 말라.
지금은 그 어떤 이가 글을 써도 모두 대통령이 내려오기를 주장하는 동어반복이다. 동어반복으로 이어진 말의 무력감을 느끼는 순간, 국민들은 행동하기 시작한다. 말로 해서는 안되는 상황을 만드는 정부가 되지 말라. 지금도 늦지 않았다. 아니 너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대화하고 토론하고 협상하고, 그리고 즉시 하야하라. 나머지는 국민들이 알아서 한다. 국민들을 당신의 종으로 생각하지 말라. 우리들이 당신을 뽑았다. 그래서 우리들이 다시 내린다. 이 사실을 명심하라.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시위현장에서 얼어붙은 젊은이들의 얼굴을 활짝 피게 하는 것이다. 자신의 얼굴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얼굴은 고통으로 점점 늙어가고, 늙은 대통령의 얼굴은 점점 젊어지는 이 시국은 우리 정부의 본 모습을 잘 보여주는 비주얼이다. 대통령은 하야해서 자신의 젊음을 더 유지하기 바란다. 하지만 그 고독하고 힘든 자리에서는 아니다. 그 자리에서는 사람이 젊어질 수가 없다.
지금 들고 있는 촛불은 '단순한 촛불'이 아니다. 이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던지, 촛농이 흐르면 저절로 사리지는 물질이 아니라 국민들의 마음인 것이다. 대통령은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있는 것에 정말 감사해야 한다. 이 작은 빛이 당신이 보지 못하는 당신의 본 모습을 비추어 주는 태양이기 때문이다.
지금 광화문 촛불은 태양이고 달빛이다. 얼마나 고마운 국민들인가? 그리고 박근혜를 비판하는 세력을 예수와 유다, 베드로의 배신에 비유하는 정치인의 발언이 엉뚱한 것은 그들이 촛불을 들지 않아서이다. 깜깜한 어둠속에서 길을 찾으려고 하니 계속 실수만 하는 것이다. 이런 상태를 맹목이라고 한다. 아무 것도 보지를 못하니 무엇을 하겠는가.
함성소리가 파도소리처럼 들린다. 포말지는 파도의 끝에 매달려 있는 물방울처럼 온 국민들이 밀려오고 또 밀려온다. 이것은 거대한 파도이자 시대의 흐름이자, 어처구니없는 국정농단에 대한 비명소리이다.
경복궁역의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내려갔다가 화장실에 가려는 인파에 밀려 다시 올라왔다. 서촌에 있는 친구 사무실 화장실을 이용하고 다시 거리에 나서니 온 몸이 파김치가 된다. 홀로 있다면 견딜 수 없는 자리다. 하지만 인파로 들어가 같이 걸으면 신기하게 힘이 난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힘이다. 나는 알고 있다. 늙고 지친 나의 힘은 보잘 것 없다. 하지만 우리들은 강하다.
푸른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가 떠오른다. 국민들이 물방울처럼 모여 거대한 바다를 만들었다. 쓰나미처럼 거칠게 몰려가다가 다시 잠잠해진다. 아, 위대하다. 지난 1980년 최루탄 세대인 나는 시위 현장이 다시 거칠어지고, 정경들과 조폭들의 최루탄과 물폭탄, 곤봉이 난무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오늘은 시위의 절정이 아니던가, 하지만 사람들은 서로 격려하고 웃고, 노래 부르고,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 젊음과 늙음이 한곳에 모여 서로의 손을 잡고 걸었다. 서로 소통하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함께하자는 메시지를 걸음걸이로 함께하고 있었다. 이런 글 따위가 그들의 한 걸음과 비교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단, 나도 조금 같이 했으므로 이 글을 적을 수가 있었다.
다음날, 11월 27일 새벽이다. 이 원고를 쓰고 있는 오늘은 아버지의 기일이다. 오늘이 박근혜 정권의 마지막 날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