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점장은 물리학자들이 '진공眞空'’이라고도 부르는 것으로, 양자역학은 완전한 진공, 즉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 같은 것은 없음을 보여주었다. 아원자 차원에서 바라보면 진공으로 여겨지는 곳에서도 보이지 않는 활동이 들끓고 있었다. 그러나 이 미세한 요동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것에도 변화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져 대체로 무시되었다. 그런데 더 나은 답을 원했던 몇몇의 과학자들이 양자물리학 계산에서 항상 배제하던 일부 방정식을 다시 검토한 결과 그것은 영점장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알아냈다. 물질의 본질에 관한 개념에 영점장을 포함시킨다면 우주의 기반은 넘실대는 에너지 바다, 즉 하나의 광대한 양자장quantum field이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주의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거미줄로 서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었다. 영점장에서 끊임없이 들끓는 에너지를 고전 물리학에 적용하면 양자론의 기묘한 현상들을 대부분 설명할 수 있었고, 그렇다면 우주의 성질을 설명하는 데 굳이 두 가지 물리학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영점장은 큰 세계와 작은 세계 모두에 대해 성립하는 통합 물리학의 탄생 가능성을 열어준 핵심 키워드였던 것이다.
인간을 포함해 모든 생물은 무한한 에너지 바다와 정보를 끊임없이 교환하는 양자 에너지 덩어리였다. 우리 몸의 중앙 지휘자로 간주돼온 뇌와 DNA는 영점장에서 얻은 양자 정보를 전달하고 수신하고 해석하는 일종의 변환기였다. 기억은 뇌가 아니라 영점장에 저장되며, 물질의 법칙 밖에서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마음조차 양자 과정을 따르며 작용했다. 결국 우리와 우주의 관계에는 ‘나’와 ‘나 아닌 것’의 구별이 없으며, 하나의 근원적인 에너지장만 존재했다. 우리의 건강과 병약함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힘은 병균이나 유전자가 아니라 바로 이 에너지장이며, 따라서 치유를 위해 이용해야 하는 힘도 이 에너지장이다. 우리는 문자 그대로 세계와 공명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새로운 이야기는 인간의 잠재력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개념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걸 보여준다. 우리가 우리의 생각과 의도에 반응하는 에너지장을 통해 세계 전체와 끊임없이 즉각적인 소통을 하는 존재라면, 세계는 내가 지금 무슨 행동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우리의 삶은 모든 의미에서 우리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책 속으로
만약 우리가 서로 분리된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면, 더 이상 모든 것을 ‘승리’와 ‘패배’의 관점에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나’와 ‘나 이외의 것’이라고 부르는 것을 다시 정의하고, 다른 사람들과 상호 작용하고 사업을 하고 시간과 공간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일을 선택하고 실행하는 방식과 사회를 조직하는 방식, 그리고 자녀를 키우는 방식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르게 살아가는 방식, 즉 완전히 새로운 ‘존재’ 방식을 상상해야 한다. 우리가 만든 사회의 모든 것을 폭파시켜 허물어뜨리고 잿더미가 된 땅 위에서 다시 건설해나가야 한다.(15쪽)
인체가 가변적인 양자 요동의 장과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는 것은 세계에 대해 심오한 의미를 지닌 사실을 시사한다. 이것은 인간의 지식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깊고 넓다는 것을 암시한다. 또한 이것은 각자가 지닌 개별성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만약 생물이 궁극적으로는 장과 상호 작용하면서 양자 정보를 송수신하는 하전 입자들이라면, 우리는 어디에서 끝나고, 나머지 세계는 어디에서 시작될까? 그리고 의식은 어디에 존재할까? 우리 몸 안에 있을까, 아니면 저 밖의 영점장에 있을까? 실제로 우리와 나머지 세계가 본질적으로 서로 연결돼 있다면, ‘저 밖’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141쪽)
무의식 마음(생각과 의식적 의도 이전의 세계)과 물질의 ‘무의식’(영점장)은 모든 가능성의 확률적 상태로 존재한다. 무의식 마음은 거기서 개념이 생겨나는 전前개념 단계의 기반이고, 영점장은 물리적 세계의 확률적 기반이다. 이 둘의 근본은 마음과 물질이다. 아마도 공통의 기원에서 생겨난, 잠재적으로 실재하는 이 차원에서는 양자 상호 작용이 일어날 가능성이 더 클 것이다. 잔은 가끔 아주 급진적인 개념도 생각해보았다. 양자 세계 속으로 충분히 깊이 들어가면, 정신과 물질의 구별이 없어질지 모른다. 그곳에는 오직 그 개념만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수많은 정보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의식일지도 모른다. 실재하지 않는 세계는 두 개가 아니라, 오직 하나만 존재할지 모른다?그것은 바로 영점장과 스스로를 결맞게 조직하는 물질의 능력이다.(172~173쪽)
미래의 모든 것은 순수한 잠재성의 영역에서 맨 아랫단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관찰 행위가 양자적 실체를 현실로 나타나게 하는 것처럼, 우리가 미래 또는 과거를 들여다볼 때, 우리는 어떤 사건이 형태를 제대로 갖추어 실현되도록 돕는다. 아원자 파동을 통한 정보 전달은 시간이나 공간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모든 곳에 퍼져 있으며 늘 존재한다. 과거와 현재는 뒤섞여 하나의 광대한 ‘이곳과 지금’을 이루고 있어, 우리 뇌는 과거나 미래에서 온 신호와 이미지를‘포착’할 수 있다. 우리의 미래는 모호한 상태로 이미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현재에서 현실화할 수 있다.(236~237쪽)
린 맥태거트 지음 | 이충호 옮김 | 김영사 | 360쪽 | 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