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과 똥개들 : 언론 게이트 문지기들에 관한 소설'을 발제한 언론연대 전규찬 대표(한예종 교수)는 "(지금의 상황은) 민주공화국의 여러 재원들을 다 해먹다 보니 탈이 난 것이다. 청와대가 민주공화국과 헌정질서를 농단한 것 아닌가. 따라서 지금 사태를 게이트 하나로 상정하지 말아야 한다. '시스템의 시스템들', '게이트의 게이트들'로 봐야 맞다"고 말했다.
전 대표는 "국가·비선·자본 혹은 박근혜·최순실·이재용'이라고 하는 3개 협잡꾼들이 도둑질을 했는데, 이 게이트가 드러나지 않도록 철통 같이 게이트키핑한 곳들이 있었다. 그것을 '언론 게이트키핑'이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대표는 "박근혜를, 최순실을, 이재용을 제거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는데 특정인을 찍어서 제끼면 (문제 해소가) 가능하다고 보는 건 일종의 환상이다. 사람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 내는 기구와 기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언론탄압과 여론검열을 총괄·총지휘하는 컨트롤타워(머리)에서 시작해, 이를 집행·관리하는 다양한 기관·조직들(가슴)을 거쳐, 구체적인 검열 조치·프로그래밍(복부)을 통과하면, 마지막으로 기사 쓰고 선전물 배포하는 기레기들과 권력에 입맛에 맞춰 정책·제도 담론을 생산하는 어용학자들(수족)이 남는다"고 전했다.
구체적으로, "청와대-비선실세로 직조된 컨트롤타워가 충성스러운 낙하산 인사를 통해 공영방송과 연합뉴스 등의 지배구조 및 게이트(키핑) 관직을 좌지우지한다. 동시에 청와대는 홍보수석 직책에 SBS나 YTN 채널의 인사를 끌어들인다"며 "아래로 내려보내기(Pushing Down)에 덧붙인 위로 끌어올리기(Drawing Up) 전술이다. 혹은, 밀어내기(Pushing)와 끌어들이기(Pulling)의 이중전략으로 방송을 관리했다고 볼 수 있겠다"고 설명했다.
◇ "언론 부역자들 기록으로 남겨야"…"학계 반성도 필요"
토론자들은 언론이 정치권력-비선-자본으로 이루어진 삼각 체제가 드러나지 않게 애써 온 현 상황의 원인을 살피고,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게 하기 위한 다양한 대안을 내놓았다.
한겨레21 김완 기자는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을 집중 취재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를 전했다. 김 기자는 "박근혜 정부에서 일했던 청와대 관계자들과 최대한 통화하고 있는데 아무도 '내가 잘못했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어쨌든 우리(청와대 시스템)는 '가동'했는데 결과적으로 이렇게 됐다는 식으로 말한다. 이 정부의 죄의식, 윤리관, 도덕성을 보여주는 단면"이라며 "(지금 이 상황이) 굉장히 복잡한 것 같지만, 자기의 믿음 몇 개에 사회 전체를 구겨넣는 방식으로 간단하게 (국가를) 운영해 온 게 아닌가 싶다"고 진단했다.
한국기자협회 김지방 부회장(국민일보 기자)는 "게이트의 게이트들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기자들이)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살았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굉장히 부끄럽다. 이때 기억해야 할 사람들이 언론 해직자들이다. 그들이야말로 게이트의 게이트들을 가장 민감하게 느꼈고 그 그물을 찢으려고 했던 사람들"이라며 "언론인들이 적들을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안에 내면화되어 있는 왜곡된 가치관과 시각을 먼저 반성하고 벗겨내야 하지 않을까"라고 제안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 윤창현 본부장은 "시스템 실패를 이야기하지만 그 실패도 결국 사람이 이끈 것이다. 좋은 시스템을 구축해 놔도 인간 의지의 문제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언론 부역자들 문제를 가볍게 치부해선 안 된다. 반발이 잇따르겠지만 기록으로 남겨 이후 언론 시스템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각성하게끔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립PD협회 김영미 전 협회장은 "요즘 보도는 뭘 했든 간에 다 '최순실'로 이어지는데, 그와중에 언론에 대한 비리는 전혀 안 나온다. 우리가 취재를 안 하니까. 우리가 먼저 파야 한다고 생각한다. 광장에 있는 촛불들이 언론을 겨냥하기 전에 이후 액션을 준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며 "언론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언론인이) 부역할 수 없게끔 하는 장치를 스스로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노조 김동원 정책국장은 "언론 게이트에서 빠진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가 학계다. 단순히 언론학자로서 비판자 역할을 못한 것이 아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동안 얼마나 많은 언론학자들이 (정부) 프로젝트를 하면서 규범적이고 고고학적인 얘기를 해 왔나. 방송 정책에 면죄부를 주고 껍데기를 씌운 학계는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정말 궁금하다"면서 "언론 부역자 리스트가 필요하지만 학계도 그런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