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란의 대한민국 황제대통령제- 이것이 대안이다'

'광란의 대한민국 황제 대통령제' 1· 2는 '광란'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대통령 중심의 대한민국 정치 역사를 다룬 책이다. 정권의 시대순으로 구성된 이 책은 해방 이후부터 전두환 정권이 끝나는 6.29 민주화 선언까지, 직선제 부활부터 현 박근혜 정권까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권에서는 이승만 정권 장면 내각,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을 다룬다. 2권에서는 노태우 정권, 김영삼 정권, 김대중 정권, 이명박 정권, 박근혜 정권까지 다룬다.

각 정권의 시작부터 교체되는 시점까지 벌어진 정치적 사건을 상세하게 다루며 주요 인물, 사건이 가지는 숨은 의미와 발생 배경까지 서술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 한국 정치에 비전을 제시하고자 했다. 한 번을 제외하고 쭉 한국의 정부 형태였던 대통령제하의 정치 역사를 이 책을 통해 되돌아보면 우리 대통령제가 가진 문제점이 보이고 그를 통해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 수 있다.

한국 정부 형태는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황제대통령제다. 게다가 5년 단임제인 대통령의 임기는 계속하여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대로 나아간다면 앞으로 적힐 우리 역사에서 성공한 대통령, 추앙 받는 지도자는 없을 것이다. 끝끝내 정치후진국으로 남을 것은 물론이다.

현재의 혼란은 대통령이 가지는 막강한 권한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혼란을 수습할 만한 무언가가 필요한 것은 아닐지 생각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대통령이 가진 힘을 덜어낼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

강력한 정치혁명, 그것도 국민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필요한 우리에게는 과거를 돌아보고 문제점을 차근차근 짚어볼 시간이 필요하다. 이 책이 그런 책이다

책 속으로 (1권)

1948년 8월 15일에 시작된 제1공화국은 초기부터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출발하였다. 한국은 미국의 절대적인 영향권에 있었다. 미국은 미국 편에 설 수 있는 친미주의자를 대통령으로 선택하고자 하였다. 당시 미국이 주목하는 인물은 민족주의자인 김구와 친미주의자인 서재필 및 이승만을 들 수 있다. 이 중에서 이승만이 서재필보다 적격인 이유는 이승만이 서재필보다 친미적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권모술수를 소유한 인물로서 의사 출신인 서재필보다 정치적 성향이 강했다.
- P. 60

한국의 군사정변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미국에 대해서 박정희가 꺼내놓은 카드는 이승만 정권 이후 성사되지 못한 한일관계 정상화 카드였다.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군사정변 직후에 한국을 방문한 미국 국무장관 딘 러스크를 통해서 조속한 시일에 한·일 국교 정상화를 약속하였다. 그해 가을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미국 방문에 앞서 일본을 방문해 당시 이케다 하야토 수상을 방문하여 양국 간의 국교정상화를 제의하였다. 이러한 박정희의 한·일 국교 정상화 카드에 미국의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은 한국의 군사정변을 인정하게 되었다.
- P. 89


5년 후 유신호 침몰의 결정적인 간접적인 요인은 바로 문세광 사건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박정희의 인사 스타일은 한번 사람을 쓰면 금방 바꾸지 않고 오래두는 스타일이다. 만일 문세광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박정희는 경호실장 박종규를 그대로 등용하고 후에 10·26 사건의 장본인인 차지철을 경호실장으로 등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세광 사건 이후 박종규는 사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그리고 후임에 차지철이 등용 되면서 박정희를 등에 업고서 월권행위를 하였다. 그 결과 박정희 역시 암살당하는 역사적인 불행이 발생하였다.
- P. 158

박정희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은 시민에 의한 혁명밖에 없었다. 그런데 박정희 정권이 시민혁명이 아닌 정권 내부의 힘에 의해서 넘어갔기 때문에 그 공백은 내부의 힘에 의해 메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시민혁명을 거치기 전에는 주변의 강한 조직에 의해서 새로운 힘이 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박정희 체제의 전체주의는 결국 정치화되고 조직화된 군부가 정권을 찬탈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모든 기능이 마비된 상태에서 가장 강한 조직력을 가진 집단은 군부이기 때문이다.
- P.222

삼청교육 대상자들을 보면 35.9퍼센트가 전과기록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또한 6만 명 이상의 사람들을 군·검·경이 교육대상으로 삼은 것은 신군부가 국민 위에서 국민들의 신체를 비롯한 모든 것을 속박시킬 수 있다는 위협을 보여줌으로써 모든 국민들이 신군부가 무섭다고 인식하도록, 일종의 공포정치를 보여준 결과로 볼 수 있다.
동시에 삼청교육생들에게 육체적인 고통을 가하여 그들이 당한 육체적인 고문은 한국 국민 누구든 언제든지 당할 수 있다고 위협한 것과 같다. 즉 간접적으로 신군부가 국민 위에서 무력으로 인권을 유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시 효과를 노린 위협이며 신군부가 국민에게 보낸 경고의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 P. 253

책 속으로 (2권)

그러나 한국에서는 대통령 선거에서 외곽 비선 조직 단체가 대통령을 당선시키면 무조건 국가의 요직을 독식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일등개국 공신이 된다. 16년 만에 부활된 직선제의 폐단이 바로 외곽 조직이다. 13대 대통령 선거 당시 ‘노태우 대통령 만들기’에서 외곽 조직으로 활동한 ‘월계수회’가 효시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 공신인 ‘민주산악회’ 역시 김영삼 당선 후에 정부에 깊이 관여하여 원래의 민주화 운동과는 다른 이익집단으로 등장하였다. 또 다음에 등장한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의 외곽 단체인 ‘전국청년연합회’인 연청 역시 김대중 당선 후에 정부 이익집단으로 등장하였다.
- PP. 27~28

노태우 정부가 군사정권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이미 군사정권이 가진 힘은 서서히 무력화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영삼이 여당이자 군사정권의 연장선인 노태우 정권에 연합한 이유는 다음번 선거에서도 김대중과 분열될 것을 우려해서였다. 또한 자신의 당이 제2야당으로 추락한 데 대한 두려움 때문에 군부와 손을 잡은 것인데 이것은 정의로운 일이라 볼 수 없다.
- PP. 35~36

김대중은 군사정권의 핵심 인물들을 왜 발탁했는가? 이것은 아마 지역 안배 차원에서 경북 출신을 기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로써 김대중 정부의 일관성이 상실되어 버렸다는 문제가 생겼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밀어 붙였어야만 했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는 집권하면서부터 과거사 청산 문제는 그냥 ‘화해’라는 명목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5공과 관련된 광주민주화항쟁도 물고 늘어졌어야만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인간적인 차원에서 용서와 사랑으로 타협하고 말았다. 역사와 정치발전을 위해서 짚고 넘어갔야만 했다. 서양의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랐다는 교훈을 소홀히 한 것이 김대중 정부의 실책이라고 할 수 있다.
- P. 144

노무현이 추구한 개혁은 보수들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박탈하여 그것을 일반 서민들에게 돌려주겠다는 의도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보수집단들의 강한 저항에 부딪치게 된다. 보수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진보가 추구하는 길에 방해를 놓기 시작한다. 결국은 치열한 싸움으로 변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이 진보 쪽으로 돌아서야만 한다.
- PP. 164~165

또한 이명박 인사의 특징은 대부분 서울시와 관련된 인사가 대거 등용되었다는 것이다. 청와대 수석을 비롯한 대부분 인사들이 이명박 서울시장 재임 시에 같이 있었던 인사들이다. 도시일 뿐인 일개 서울시를 국가경영의 모델로 삼은 것이다. 이것부터가 잘못된 인사다. 초대 비서실장에 지리학자를 등용한 것도 서울시장 재임 시부터 염두에 두었던 4대강 사업에 초점을 맞추어서 지리학교수를 채용한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또한 몇 달 가지 못해서 초대 청와대에 기용된 수석들 대부분이 교체되었다. 이것은 능력 면에서나 과거의 비리 등이 드러나면서 사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 P. 246

조해경 지음 | 앤길 | 1권 322쪽, 2권 402쪽 |1권 15,500원, 2권 16,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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