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박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 담화문을 발표했지만 촛불로 표출된 성난 민심은 더욱 격렬해졌다.
진보진영 시민사회단체 연대체인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준)은 5일 오후 4시 광화문 광장에서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2차 범국민행동' 문화제를 열었다.
이는 지난달 29일 열린 1차 주말 촛불 최종 참가 인원(경찰 추산 1만2000명)의 4배에 가까운 수치다.
이들 인파는 한때 광화문 앞에서부터 사거리에 있는 충무공이순신동상을 넘어 서울광장 인근까지 줄띠처럼 이어졌다.
고등학생 아들을 데리고 나온 김모(45·여) 씨는 "지금의 국정농단을 단죄하지 않으면 결국엔 우리 자식에게도 피해가 가는 일"이라면서 "정권 규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 위해 거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6살 난 딸아이를 목마에 태우고 행진에 나선 이모(36) 씨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궂은 날씨 속에도 어린 딸을 데리고 나왔다"면서 "눈앞에 아른거리는 촛불물결을 아이가 영원히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빗발쳤다.
전국 69개 대학 총학생회가 모인 '전국 대학생 시국회의'의 안드레 공동대표는 "과거 일제 치하의 항일투쟁과 4·19 혁명에 앞장선 대학생 정신을 이어받아 이 정권을 무너뜨리고, 반드시 국민이 주인 되는 나라를 찾겠다"고 말했다.
서울 동대문에서 의류 판매업을 하는 강모(57·여) 씨는 "인형이 청와대에 있어서야 되겠느냐"면서 "경제는커녕 국정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 촛불을 보고 물러났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참가자들은 1부 행사를 마친 뒤 도심 거리행진을 시작했다.
행진경로는 종로와 을지로를 거쳐 서울광장을 돌아 광화문 광장으로 복귀하는 코스와, 종로와 안국역을 거쳐 광화문으로 돌아오는 코스 2가지로 이뤄졌다.
이날 마지막 행진대가 분기점인 종로3가역에 도달하는 데 2시간가량 걸렸을 만큼 많은 시민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왔다.
길가 환풍구 위에서 박수를 치며 행진 참여자를 격려하는 중년부터, 여중생의 촛불이 바람에 꺼지자 이를 자신의 촛불로 다시 켜주는 할아버지까지 모두가 하나 된 모습을 보였다.
청와대 진입목인 안국역과 운현궁 사이에는 경찰이 2중으로 차벽을 쳐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지만 큰 충돌은 없었다.
행진 후 광화문 광장에서 진행된 2부 행사는 저녁 9시쯤 끝났지만 집회 참가자들은 광화문 KT 앞에서 자유발언을 이어갔다.
한편, 이날 촛불집회는 서울을 비롯해 광주, 대구, 제주 등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
광주에서는 민주주의 광주행동, 백남기 농민 광주투쟁본부 등 3000여 명(경찰 추산)의 시민들이 모여 오후 6시부터 동구 금남로에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열었다.
같은 시각 대구에서는 시민과 사회단체 1200여 명이 2·28기념공원에 모여 '정권퇴진, 대구 1차 시국대회'를 열어 반월당까지 약 1.2㎞ 구간을 행진했다.
제주에서는 오후 7시쯤 700여 명의 시민들이 제주시청 앞에 모여 '박근혜는 하야하라', '이게 나라냐'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거리 행진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