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평등의 원칙…헬조선 카스트 정점엔 '최순실'

[민주주의를 묻다②] 갑질 끝판왕 농단에 근본 신뢰마저 흔들려

'최순실 게이트'는 민주주의가 통째로 망가진 사태였다. 시민들은 국민이 뽑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 노릇을 했다는 사실에 충격에 빠졌고 "이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가 맞느냐"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CBS노컷뉴스는 3차례에 걸쳐 '최순실 게이트'가 우롱한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되짚어본다. [편집자 주]

최순실 씨. 박종민 기자/자료사진
비선실세가 국정뿐 아니라 교육 등 민간 영역에서까지 전횡을 휘두르고 다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들은 절망에 빠졌다.


변변찮은 출신이나 배경에도 불구하고 실력으로 승부하려던 이들에게 '최순실 게이트'는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평등의 원칙까지 위협하는 까닭이다.

◇ "어차피 개돼지…열심히 사는 게 의미 없구나"

최근 페이스북·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서는 '헬조선 계급도'가 등장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피라미드 형태로 구성된 계급도 정점에는 태양으로 형상화된 최순실(60) 씨 사진이 '무당'이라는 명칭과 함께 놓여 있다.

최근 페이스북·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서 확산하고 있는 '헬조선 계급도'
그 아래로는 순서대로 △무당의 가족(최 씨의 딸 정유라(20) 씨) △무당의 측근(고영태 씨) △왕족(박근혜 대통령) △귀족(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이 놓여 있다.

△정치인·관료 △법조인·전문직 △공무원이 뒤를 이었고 맨 아래에는 일반 국민을 나타내는 △개돼지 사진 만이 이름도 없이 배치됐다.

이런 풍자물이 나온 건 정유라 씨가 승마특기생으로 이화여대에 입학한 과정이 석연찮다는 의혹이 나온 데 이어 고등학교 출결관리까지 문제가 되면서부터였다.

계급도를 본 누리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열심히 사는 것 다 의미 없구나. 삶의 의지가 떨어진다", "어차피 난 개돼지였구나"라는 댓글을 달았다.

◇ "달그닥 훅…능력 없으면 부모를 원망하라고?"

'비선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 씨와 딸 정유라 씨. (사진=자료사진)
이번 스캔들이 특히 공분을 샀던 이유는 최씨 일가와 측근들이 부정하게 얻은 권력을 정·재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민들의 삶과 맞닿아 있는 교육 등 일상적인 영역에서까지 휘둘렀기 때문이었다.

정유라 씨의 중·고·대학교 출결관리가 엉망이었다는 점과 황당한 리포트를 제출기한을 넘겨 내고도 B 학점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한 학생과 학부모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한 이화여대 학생은 학교에 내건 자보를 통해 "어째서 매일 밤을 새우고 충혈된 눈으로 과제를 마친 뒤 매주 수업에 나왔던 학우는 정유라 씨보다 낮은 점수를 받아야 하냐"고 성토하기도 했다.

이런 절망감은 정유라 씨가 2년 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돈도 실력이야.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고 썼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커졌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최은순 회장은 최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인터뷰에서 "정 씨의 페북 글은 청년들 사이에 돌고 있는 '금수저·흙수저'론의 단면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학부모들은 정말 분노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 사장된 '평등의 원칙'…근대사회 능력주의 부정

기회의 평등마저 무너지고 '신분제'가 공고해진다는 인식은 민주주의 자체를 유지하게 하는 근본적인 신뢰를 뒤흔들고 있다.

서강대 사회학과 전상진 교수는 "제도와 체제에 대한 사람들의 근본적인 신뢰가 최순실·정유라로 인해 순식간에 무너졌다"며 "근대사회 이후 계속된 능력주의나 노력주의가 흔들리고 카스트, 신분사회처럼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오수열 교수는 "특권층에게 기회가 독점되거나 권력을 이용해 다른 사람의 기회를 빼앗으면 안 된다는 건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라며 "이 원칙이 무너지면 민주주의는 무너질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심지어 민주주의를 공부하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현실 정치에 대한 회의론까지 확산하고 있다.

서강대 사회과학부 김기완 학생회장은 2일 열린 전국 17개 사회과학대 학생회 시국선언에서 "우리가 배웠던 많은 것들이 한낱 글자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진 지금 우리가 느끼는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일갈했다.

연세대 사회과학대 송하람 학생회장은 이날 "지금까지 강의실에서 '어떻게 하면 이 사회가 더 나아질 수 있을까?' 하며 공부했는데 더 이상 펜을 잡기가 부끄러워졌다"며 "이런 상황에서 책에 있는 것을 배우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성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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