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마치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 같다. 누구에게나 사랑 받았고, 누구에게나 미움 받았다. 집권 시절, 국민들 사이에서는 노 대통령을 향한 뜨거운 신뢰과 비판이 공존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아는 대통령인 그의 모습을 그리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이 지역주의 극복을 꿈꿨던 2000년 16대 총선 부산 북강서을 출마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의 시점은 선거 유세를 위해 부산을 누비는 2000년의 노 전 대통령과 그의 죽음 이후,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 사이를 끊임없이 교차한다.
지역주의라는 높은 장벽을 앞에 두고 노무현은 신념을 잃지 않는다. 이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국민들은 '지역'이 아닌 '사람'을 보고 소중한 한 표를 던지리라 믿는다.
선거 사무실에서 쪽잠을 자고 밥도 먹지 못한 채, 그는 1분 1초라도 부산 시민들과 만나기 위해 움직인다. 자신에게 무관심하거나, 부정적인 유권자에게도 서슴없이 다가가 농담을 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시민들과 한 '부산 갈매기'를 막힘없이 부르겠다는 작은 약속도 소중히 지키려 노력한다.
유혹은 차고 넘친다. 대한민국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지역주의를 이용하고 싶고, 자신을 지지하는 유권자들만 이끌고 가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하는 정치인들이 비일비재하다.
영화 속 노무현은 계속해서 샘솟는 욕심을 퍼내고, 버린다. 소위 '출세'를 한다고 해도 스스로 바뀌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그래야만 언젠가 이 나라가 가진 자가 아니더라도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얼굴에는 잠시도 피로가 가시지 않는다. 그럼에도 어딜 가든 따뜻하게 시민들과 교감하는 그를 보며 정치인 노무현,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이 아닌 인간 노무현의 진심을 엿볼 수 있다.
그로부터 16년 후인 2016년, 더 이상 대한민국에 노무현 대통령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세상을 떠난 그의 이름 앞에는 옛 고(故)자가 빠짐없이 붙는다.
그가 떠난 자리에 노무현을 기억하는 이들이 모여 스스로 겪었던 노무현이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다.
누군가에게는 모두가 자신을 비난할 때 감싸준 따뜻한 상관이었고, 안타까운 이상주의자였다. 누군가에게는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동지였고, 닮고 싶은 정치인이었고, 더 나은 시대를 향한 희망이었다.
정치인으로서 그의 과오와 성과를 따지고자 함이 아니다. 그들에게 노무현은 대통령보다는 '인간'에 가깝다. 그저 노무현을 통해 최소한 인간성이 살아 숨쉬던 시대를 그리워할 뿐이다.
과연 우리는 '신념을 잃지 않은' 대통령이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나라에 살고 있는가. 신념조차 없었던 지도자가 국민을 우롱하는 시절에 당도하고 만 것은 아닌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곁을 떠난 노무현의 옛 시절이 한 가닥 희망과 위로를 던진다.
지금도 어딘가에는 그 시절의 노무현처럼 지역주의가 사라지길 꿈꾸는 정치인, 국민의 눈높이에서 생각하는 정치인, 대통령이 할 일을 봉사로 여기는 정치인, 권력욕 앞에서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는 정치인, 자신의 연설문 정도는 스스로 볼 줄 아는 정치인이 있으리라는 짐작을 해보는 것이다.
2000년 총선은 결국 노무현의 패배로 돌아갔다. 어찌 보면 영화는 그가 실패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셈이다.
그토록 노력했지만 지역주의의 견고한 장벽을 끝내 넘을 수 없었다. 한 줄기 울음소리와 침묵만이 감도는 선거사무실에서 노무현은 먼저 나서서 노래를 부른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말이 맞았다. 그 날은 노무현 '대통령'의 시작이었다. 3년 후, 국민들은 노무현이 꺼내든 진심에 화답했다.
멍들어 다친 대한민국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야기한다. 지금 이 실패가 끝이 아니라고, 진정한 결말은 우리가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현실이 척박하고 지독할수록 우리는 더 절실하게 희망의 싹을 틔웠다. 이제 우리 모두에게는 다시 한 번 바른 길을 찾아내 나아갈 과제가 남았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