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마저 차가웠던 지난 29일 서울 광화문 광장,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나온 초등학생이 어른들을 따라 “박근혜는 하야하라” 구호를 외친 뒤 물었다.
이날 박 대통령 규탄 시위에는 ‘하야’란 단어를 처음 들어봤음직한 어린 아이들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취업난에 정신없을 대학생과 입시 준비에 바쁜 고교생들까지 촛불을 들었다.
다양한 계층의 자발적 참여란 점에선 유모차 부대가 등장했던 2008년 광우병 쇠고기 반대 시위를 연상케했다.
하지만 분노의 수위는 훨씬 더 높았고 절박감마저 묻어났다. 2008년은 이명박 정권 첫 해로서 어찌됐든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반면 이번 시위는 이른바 ‘이명박근혜’ 9년에 대한 총체적 심판 성격이 짙었다.
사람들은 피 흘려 이룩한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가 속절없이 후퇴하는 것은 물론 경제와 안보마저 맥없이 무너지는 것에 “이제는 나서야 할 때”라는 본능적 위기감이 발동한 것 같았다.
첫 시위임에도 수만명이 몰려나와 대통령 하야를 거리낌 없이 외친 것이 그 근거다. 그들은 “이게 나라냐”라는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작금의 현실에 경종을 울리고 근본적 변화를 갈구했다.
이런 점에서 10.29 광화문 시위는 첫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일궈낸 1987년 6월 항쟁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6월 항쟁은 ‘넥타이 부대’로 상징되는 국민적 저항으로 전두환 군사정권을 종식시킨 대사건이다. 박종철, 이한열 열사 등의 희생이 도화선이 되어 누적된 군부독재에 대한 불만을 폭발시켰다.
문제는 영악한 여당과 미욱한 야당에 의해 변혁을 향한 국민적 에너지가 지리멸렬해질 가능성이다.
6월 항쟁도 직선제 개헌을 약속한 6.29 선언과 이후 야권분열 전략에 휘말려 쿠데타 세력인 노태우 정부가 뒤를 잇게 하는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다.
벌써부터 여권은 노회한 전략으로 정국을 호도하고 꼬리 자르기에 나선 정황이 역력하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최순실 사건은 개헌의 걸림돌이 아니라 기폭제”라고 주장하거나 거국중립내각으로 되치기를 시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성난 민심은 묻고 있다. 최순실 사건이 단순한 레임덕이냐고. 역대 어느 정권에서 그 비슷한 사건이라도 있었느냐고.
다음 대통령 선거에선 후보들의 정신감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것은 이번 사건의 블랙코미디 같은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새누리당이 참회하기는커녕 되려 거국내각을 주도하겠다며 국면 전환을 시도하는 것 역시 ‘촛불 민심’을 모르는 처사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는 여당 실세들은 거국내각 참가 자격이 없다. 중립성을 해칠 수 있어서다.
언필칭 중립내각이라고 하면서 김종인, 손학규, 김병준 같은 야권 인사들을 무턱대고 총리 물망에 올리는 것은 또 무슨 연유에서인가.
오로지 자숙만이 필요한 국정농단 세력을 찍어내고 흔들림 없이 국정 쇄신을 요구하는 것은 다시금 나라의 진짜 주인이 되고자 하는 국민들의 몫이다.
다만 우리 스스로도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하고 주인 노릇을 못한 책임에 대해선 어찌됐든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6월 항쟁 이후 약 30년, IMF 외환위기 이후 20년 가까이 지나오는 동안 수많은 모순과 문제들이 누적됐다. 이를 애써 외면해온 결과 지금의 참담한 사태에 이르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년의 시위 참가자가 말했다. “역사에 죄를 짓기 싫어서 나왔다.” 대통령 한 명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