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다리외세크의 장편소설 '남자를 사랑해야 한다'는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 '어둠의 심연'을 영화화하려는 남자와, 그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 솔랑주의 이야기다. 주인공의 약혼녀 역을 노리는 솔랑주와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오리무중이 된 영화 촬영 계획 사이에서, 배역과 남자의 사랑을 동시에 차지하고 싶어 하는 솔랑주의 고민을 그렸다.
2008년 할리우드, 여배우 솔랑주는 조지 클루니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했다가 카리스마 넘치는 한 남자 배우에게 반한다.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 '어둠의 심연'을 영화로 찍고 싶어 하는 남자, 카메룬 출신의 흑인 남자 배우다. 솔랑주는 창백한 피부의 프랑스 여자다. 사랑한다면 피부색의 차이가 무슨 소용일까.
남자는 콩고에 가서 영화를 찍을 것이라 호언장담을 하고, 솔랑주는 이루어질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그의 원대한 계획을 돕고자 한다. 그와 함께 서아프리카로 떠난 솔랑주는 물고기에 쏘이고, 벌레에 물리면서도 한결같이 그의 곁을 지킨다. 영화에서도, 남자에게서도 중요한 존재가 되길 바라며……. 그러나 제대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랑도, 영화 제작도.
'남자를 사랑해야 한다'는 남자를 사랑하기 위한 솔랑주의 여정이다. 프랑스의 평론가 파비엔 파스코는 이 여정이 사랑하는 남자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관한 것이라고 설명하며, 이 불안은 남자의 욕망을 알 수 없다는 것에서 기인한다고 했다. 여성에게 아직도 너무 낯선 존재라는 남자를, 남자를 사랑하는 여정을 다리외세크는 아름답게 탐험한다. 그리고 이 미지의 탐험은 곧 '여자는 무엇인가' 하는 물음으로 솔랑주를 돌려보낸다.
그렇다면 여자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여자란 무엇인가? 다리외세크의 소설은 독자를 수많은 질문 속으로, 한 사람의 여성이자 질문의 정글인 솔랑주에게로 초대한다.
책 속으로
「기다림은 병이야. 일종의 정신병. 여자들이 자주 걸려.」
_ 본문 71면
그녀는 그가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겨우 믿어지기 시작했다. 그가 그녀의 인생에서 느닷없이 떠나가 버리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일정 간격을 두고 되풀이되는 그의 침묵을 침묵으로 견디곤 했다. 하루하루를 공허하게 ─ 공허하다기보다는 황폐하게 보냈다는 사실을 그에게 말하지 않는 것에 모든 자존심을 걸었다.
_ 본문 111면
그가 갔다. 순수한, 기약 없는 기다림이 다시 시작되었다. 오, 기다림은 그녀가 아주 잘 아는 분야였다. 하나의 배역을 끝내고 또 다른 배역을 맡기까지, 한 번의 촬영에서 다음 촬영까지, 그 사이에는 매번 기다림이 있었다. 하지만 이 기다림은 새로운 종류의 것이었다. 그녀는 그가 보내오는 오케이 사인에만 의지해서 살고 있었다. 그녀는 삶이 다시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_ 본문 113면
마리 다리외세크 지음 | 임미경 옮김 | 열린책들 |364쪽 | 12,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