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액만 10억" 온라인 거래사기 피해자들 한 데 뭉쳤다

"사기꾼 직접 잡겠다" 대포통장에 '1원'씩 송금해 인출책 접촉도

온라인 중고물품 거래 사기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100명이 넘는 피해자가 같은 수법으로 사기를 당했다며 모임을 만들어 집단 대응에 나섰다.

◇ '신분증·사업자등록증' 위조, 진화하는 중고거래 사기

경기도에 사는 A(40) 씨는 지난 8월 중고카메라 한 대를 구하려고 인터넷의 유명 중고물품 거래 카페에 접속했다.

적당한 가격의 판매 글을 발견한 A 씨는 판매자에게 연락했고, 먼 지역에 살고 있으니 택배를 통해 온라인으로 거래하자고 제안받았다.

온라인 거래가 의심스러워 머뭇거리던 A 씨.

이때 판매자는 자신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며 신분증과 사업자등록증까지 찍어 보냈고, A 씨는 의심을 떨쳐버리고 구매를 결정했다.

A 씨는 대금 60만 원을 보내고 물건을 기다렸지만, 카메라는커녕 판매자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

신분증과 사업자등록증도 모두 조작된 가짜였다.

사기 거래임을 알아챈 A 씨는 이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에게서 돌아온 대답에 A 씨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방 판매자의 IP주소를 추적하기 힘든 상황이며 휴대전화와 계좌번호 역시 허위라서 추적이 쉽지 않다는 것.

당장 검거가 힘드니 시간을 두고 기다리라는 대답이었다.

◇ "나도 당했다" 같은 수법 주장하는 피해자 순식간에 150여 명 모여

같은 수법의 중고거래 사기에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들 150여 명이 모임을 만들어 자체 대응에 나섰다. 이들은 사기에 관련된 계좌번호와 위조 신분증 등 수백 건의 자료를 모았다. (사진=피해자모임 제공)
분한 마음에 여러 정보를 찾던 A 씨는 자신이 대금을 보낸 판매자와 같은 이름에 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더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비슷한 수법에 속은 피해자를 모았고 3개월 만에 무려 150여 명이 피해자 모임에 가입했다.


생활가전부터 아동의류까지 사기 물품의 종류도 다양했다.

피해 금액도 한 명당 30만 원에서 최대 900만 원으로 천차만별이었다.

피해자들은 사기에 이용된 계좌번호와 전화번호, 신분증 사본 등 수백 개의 자료를 모아 공유하고 있다.

확인된 피해액은 모두 5100만 원이지만, 사기에 이용된 계좌의 수가 이미 30개를 넘고 있어 전체 피해 규모는 1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허위 판매 글의 내용이나 사기 수법 등이 유사하다는 점을 근거로 모두 같은 사기 조직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 사기조직 직접 뒤쫓은 피해자…"재발 방지" 당부

같은 수법의 중고거래 사기에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들 150여 명이 모임을 만들어 자체 대응에 나섰다.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은 피해금 인출책에게 '1원'씩 나눠 송금하는 방법으로 직접 연락을 취하기도 했다. (사진=피해자모임 제공)
피해자들은 지역 경찰서에 이 사실을 신고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A 씨가 받아든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에 A 씨는 사기조직을 직접 찾아나서기로 했다.

A 씨는 자신이 물품 대금을 보낸 계좌가 이른바 '대포통장'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고 실제 통장 명의자에게 연락을 취하기 시작했다.

이름도 연락처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A 씨는 기지를 발휘했다.

상대방의 통장에 수차례에 걸쳐 '1원'씩 보내며 입금자 명을 수정해 메시지를 전달한 것.

이 방법으로 A 씨는 통장 주인에게 '당신의 계좌가 대포통장으로 이용되고 있다면 연락을 달라"라고 알렸다.

이윽고 A 씨는 실제 계좌 주인 한 명과 통화에 성공했다.

하지만 A 씨에 따르면 계좌 주인은 자신의 통장이 범죄에 이용되는 걸 몰랐다며 자신도 역시 피해자임을 호소했다.

A 씨는 "계좌 주인 한 사람과 연락이 닿았지만 자신은 가전제품 판매대금을 받아 주는 아르바이트인 줄 알고 일을 했을 뿐 자신도 피해자라고 호소했다"라며 "결국, 범죄사실도 모르는 사람들이 하루에 5~7만 원의 일당을 받고 수천만 원대의 사기 범행을 도와준 셈"이라고 말했다.

한편 부산 북부경찰서는 A 씨가 속한 모임의 또다른 피해자 B 씨의 사건을 수사하는 등 경찰도 관련 사건에 대해 수사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북부경찰서 관계자는 "B 씨가 중고물품 대금을 입금한 명의자와 이름이 같은 계좌로 모두 10건이 넘는 사건이 접수돼 수사에 착수했다"라며 "동일한 수법에 당한 피해자를 더 확보하고 IP와 계좌번호도 추적해야해서 수사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라고 말했다.

피해자 모임은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피해를 보상받기 위해 민사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또 이같은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적 정비와 함께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피해자 A 씨는 "지금도 새로운 피해사례가 끊임없이 접수되는 등 선량한 사기 피해자가 계속 늘고 있다"라며 "다른 사람들도 속지 않도록 사기 수법을 계속 알리는 한편 관련 정보도 계속 수집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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