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이화여대의 시국선언을 시작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 등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캠퍼스에 울려 퍼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세월호 참사를 경험하며 현 정권에 반감과 상실감이 큰 '세월호세대'의 울분이라고 목소리를 모은다.
27일 오전, 서대문구 연세대에서 시국선언을 위해 모인 20여명의 학생들 사이에서 노란리본을 목에 건 학생들이 취재진 눈에 들어왔다.
이 학교 학생 이모(20) 씨는 지난 2014년 4월,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를 목도하고 잘못된 국가 시스템(구조)을 바꾸고자 행정학과에 진학했다.
이 씨는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배 안에서 죽어가는 동안 대통령과 국가는 없었다"면서 "최순실 국정농단을 보고 이제야 정부가 무엇을 했는지 깨달았다"고 말했다.
'세월호가 침몰할 때 국가는 어디 있었냐'는 규탄이 나오자고 주변에 있던 학생들은 말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이날 시국선언에 동참한 김모(21) 씨는 "세월호 침몰 직후 대통령이 책임지겠다고 눈물까지 보였지만 아직까지도 세월호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다"면서 "최순실 사태도 흐지부지 넘어갈까봐 두렵다"며 정부에 대한 불신을 내비쳤다.
서울 한 대학의 정치외교학도 심모(20·여) 씨 역시 "세월호 참사 때 우리가 국가를 필요로 했듯 지금이 그런 혼란 속 상황"이라면서 "그런데 국가는 지금 또 어디에 가 있느냐"며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현 정부의 무책임함을 질타했다.
지난 26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성인 152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취임 이후 처음으로 10%대인 17.5%로 나타났다.
27일 조사에서는 '최순실 국정개입 파문'에 대한 대통령의 책임 방식을 묻는 질문에 '하야 또는 탄핵해야 한다'는 응답이 42.3%로 조사됐다. 이중 20대에서는 58.6%가 하야 또는 탄핵해야한다고 응답했다.
전문가들도 정부를 향한 20대들의 분노와 반감에 공감했다.
서울대 사회학과 서이종 교수는 세월호를 경험한 오늘날 대학 초년생의 '학습효과'를 강조했다.
서 교수는 "지금 시국선언 일선에 있는 학생들은 '국가가 통째로 학생들을 버릴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세대"라면서 "당시의 경험이 정치적 발언을 할 때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균관대 사회학과 구정우 교수는 "대학생들의 정체성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세월호 사건"이라면서 "학생들이 우리사회의 불공정과 엘리트중심주의에 반발을 갖게 된 배경"라고 말했다.
학생들과 주기적으로 대화를 나눈다는 구 교수는 학생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세월호가 그들 뇌리 속에 강력히 각인 돼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전했다.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김형준 교수는 "세월호 사건 등으로 생긴 정부에 대한 불신이 학생들의 마음 속 기저에 깔려 있다가 최순실 사태가 터지면서 촉발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 심리학 전문가에 따르면, 청소년기는 신체적·정서적 발달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시기이기 때문에 주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아 그 기억을 오래 기억하는 습성이 있다.
27일 교수 시국선언에 동참한 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세월호 침몰과 최순실 사태 모두 '어처구니없는' 상식 이하의 사건"이라면서 "젊은 대학생들이 보기에도 어처구니없어 자연스럽게 현 정권에 반발심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28일과 주말도 학생과 교수를 비롯한 시민들이 '최순실 국정농단'을 규탄하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올 전망이다.
이날 동국대와 한국외대 학생들은 교내에서 시국선언을 이어갈 예정이며, 서울대 교수들도 지난 26일부터 준비한 시국선언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서울의 한 대학교 총학생회장에 따르면, 전국대학이 연합해 시국선언을 진행하는 방안도 대학가 내에서 논의되고 있다.
이번 주말 광화문 집회에서도 세월호세대의 자발적인 참여가 예상된다.
시민사회단체들로 꾸려진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최 씨의 국정농단 의혹을 규탄하는 촛불집회를 열 예정이다.
'박근혜 탄핵 집회, 29일 오후 6시 광화문광장'이라는 문구도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