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박 대통령은 비영리법인인 육영재단의 이사장이었다. 재단이 설립한 어린이회관은 당시에도 최씨의 인사 개입 등으로 큰 홍역을 앓았다.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이 박 대통령과 최씨의 관계에 대해 "아는 사이인 것은 분명하나 절친하게 지낸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지만, 박 대통령과 최씨는 줄곧 연을 맺은 것으로 전해진다.
1987년 9월2일 어린이회관 직원 150명은 회관앞에서 농성을 벌였다. "어린이회관이 설립취지가 무색하게 외부세력과 어용간부들에 의해 사기업화됐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어린이회관은 최씨가 운영하던 초이유치원과 자매결연을 맺었으며, 최씨가 아동교육문제연구소를 세운 뒤 경영에 깊숙히 개입했다는 게 직원들의 주장이었다. 최씨는 연구소 설립에 대해 박 대통령이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했다.
당시 매체에 따르면, 어린이회관에서 개최하는 그림대회에서 최씨의 초이학원생들의 성적이 좋지 않자, 학원 측은 박 대통령을 언급하며 강하게 항의·질타했고 이후 미술 교사와 담당과장, 부장 등이 사직권고를 받고 그만뒀다는 게 직원들의 전언이었다.
이는 최씨 딸 정유라씨가 2013년 4월 경북 상주에서 열린 한국마사회컵 전국승마대회에서 라이벌 선수에게 패하자 경찰이 심판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조사를 벌인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이 사건 이후 승마협회에는 살생부가 나돌고 대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
최씨 측의 개입으로 직장을 잃었다는 어린이회관 직원들은 140명에 달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퇴직자들은 '육영재단 복직추진위'를 구성하고 박 대통령에게 복직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냈지만, 박 대통령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을 뿐이다.
육영재단에서 발행하던 어린이 잡지 '어깨동무' 기자들은 최씨의 편집 간섭에 항의해 집단 사표를 냈고, 이를 박 대통령이 수리하는 사태도 발생했다. 당시 최씨는 32살에 불과했지만 어린이회관에 미친 영향력은 막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