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의 서장훈-현주엽?' 모비스의 행복한 '이종현 딜레마'

'한국 농구 역대 최고의 빅맨 트리오?' 2016 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 최대어로 꼽히는 고려대 출신 이종현(가운데)은 1998-99시즌 역대 최고의 빅맨 듀오로 각광받은 당시 SK 서장훈(왼쪽)-현주엽의 딜레마를 재현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과연 모비스의 선택이 어떻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자료사진=KBL)
'만수(萬手)' 유재학 감독의 울산 모비스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향후 10년을 책임질 그릇을 놓고 누구나 부러워 하는 재목들을 선택할 수 있는 '꽃놀이패'를 쥐었다. 자칫 20세기 최고의 빅맨 듀오로 기대를 모았던 서장훈(207cm)과 현주엽(196cm)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모비스는 3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16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 순위 추첨 행사'에서 영예의 1순위를 뽑았다. 오는 18일 진행될 신인 드래프트에서 첫 번째로 선수를 뽑을 기회를 안았다.


1순위가 발표되는 순간 유 감독은 김재훈 코치와 이도현 사무국장 등 관계자들을 껴안으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좀처럼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 유 감독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기쁨이었음이 틀림없었다. 동석한 모비스 왕조의 주역 양동근, 함지훈도 함께 포효했다.

그처럼 기뻐했던 이유는 이번 드래프트에는 거물급 신인들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고려대의 전성시대를 이끈 '괴물 센터' 이종현(206cm), 강상재(202cm)와 연세대의 첫 대학리그 우승을 견인한 다재다능한 장신 최준용(201cm) 등 이른바 '빅3' 중 첫 번째 선택을 할 권리가 유 감독과 모비스에게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선택이 쉽지만은 않다. 일단 이종현은 어느 구단이나 탐내는 1순위 멤버다. 실제 신장은 203cm 정도로 측정됐으나 양 팔을 벌린 이른바 '윙스팬'이 223cm로 역대 KBL 최장신인 전주 KCC 하승진(223cm)의 225cm와 맞먹는다. 용병을 능가하는 하드웨어는 역대급 선수 서장훈과 김주성(205cm · 원주 동부)의 대를 이을 만하다.

연세대 에이스 최준용은 200cm가 넘는 장신에도 1~5번까지 두루 소화할 수 있는 스피드와 기술을 갖춘 잠재력 최강의 인재다.(자료사진=대학농구연맹)
하지만 최준용도 포기할 수 없는 재능을 갖췄다. 최준용은 200cm가 넘는 장신에도 스피드와 가드의 재능을 갖췄다. 고려대와 올 시즌 대학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최준용의 돌파를 막을 선수는 없었다. 비록 부상이 있었다고 하나 이종현조차도 파울로 끊을 정도였다.

사실 유 감독은 최준용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온 게 사실이다. 이종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는 당금 최고의 대학 센터지만 최준용의 잠재력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평소 유 감독은 "이종현이 대단한 선수인 것만은 분명하다"면서도 "그러나 지도자로서 최준용을 한번 길러내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고 밝혀왔다.

유 감독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농구는 선수 전원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유럽형 농구다. 1~2명 스타 플레이어가 주도하는 미국 프로농구(NBA)와 달리 12명 전원이 제 역할을 하는 농구를 이상적으로 여긴다. 선수 전원이 유기적으로 많은 움직임을 보여야 하는 농구다.

그런 점에서는 이종현보다는 최준용이 살짝 나을 수 있다. 이종현보다는 아무래도 최준용의 움직임이 더 풍부한 것이 사실이다. 최준용은 슈팅가드에서 파워포워드, 센터까지 아우를 수 있는 하드웨어를 갖췄다.

하지만 이종현은 향후 10년 골밑을 책임질 기둥이다. 이종현은 2014년 유재학 감독이 사령탑을 맡은 인천아시안게임 대표팀에 합류해 금메달을 합작해 병역 문제에서 자유롭다. 그야말로 최강의 인재다.

다만 모비스가 이종현을 뽑는다면 포지션의 중복을 피할 수 없다. 정규리그는 물론 챔피언결정전 MVP 출신 빅맨 함지훈(198cm)이 있기 때문이다. 이종현과 함지훈은 필연적으로 골밑에서 겹칠 수밖에 없다. 이종현도, 함지훈도 포워드를 보기에는 느리다.

이는 지난 시즌 모비스가 겪었던 일이다. 커스버트 빅터(192cm)와 함지훈은 동선이 겹쳐 시즌 초반 모비스가 고전했다. 여기에 아이라 클라크(202cm)까지 모비스는 한동안 골밑이 뻑뻑했다. 다행히 함지훈이 외곽 역할을 해주면서 교통정리가 되긴 했다.

'이 둘이 한 팀에서?' 고려대 이종현(왼쪽)과 모비스 함지훈이 2013 프로아마 최강전에서 리바운드를 다투는 모습.(자료사진=KBL)
이는 1990년대 후반 서장훈-현주엽 조합과 비견될 만하다. 1989-99시즌 당시 청주 SK는 역대 최강의 골밑 자원을 얻었다. 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진로가 이미 결정된 서장훈에 휘문고 1년 후배 현주엽을 1순위로 받아들인 것. 당시 농구계에서는 "서장훈-현주엽을 누가 동시에 막을 수 있겠느냐"며 SK를 우승후보 0순위로 꼽았다.

하지만 SK는 정규리그를 8위로 마무리했다. 개인 성적은 출중했다. 서장훈은 데뷔 시즌 평균 25.4점 14리바운드 1.6블록슛, 현주엽은 23.9점 6.4리바운드 4.6도움의 어마어마한 성적을 냈다. 그러나 골밑에서 용병까지 교통정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이듬 시즌 SK는 현주엽을 이적시키는 결단을 내렸다. 슈터 조상현(현 오리온 코치)과 현금 4억 원을 받고 현주엽을 골드뱅크로 보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SK는 눈물을 머금고 1순위 초대형 신인을 내보냈으나 플레이오프 우승을 거뒀다.

현주엽은 그러나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KBL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비록 '무관의 제왕'에 그쳤지만 어느 팀에서나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며 한국판 '찰스 바클리'라는 별명을 얻으며 최고의 파워 포워드로 자리매김했다.

2004-05시즌 당시 KT 현주엽(오른쪽)이 삼성 서장훈의 레이업슛을 막는 모습.(자료사진=KBL)
함지훈과 이종현의 조합도 서장훈-현주엽과 비슷한 양상을 보일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모두 골밑 자원으로 동선이 겹칠 수 있다. 함지훈이 3점슛을 장착했으나 기본적으로 느리다. 이종현과 함께 뛰면 팀 전체적인 스피드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모비스도 고민이다. 옆에서만 보면 무조건 이종현을 뽑아야 한다는 의견이지만 함지훈과 화학적 결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함지훈은 2013-14시즌 이후 모비스와 5년 계약을 맺었다. 아직 3년의 시간이 남아 있다.

'국보급 센터' 서장훈은 현주엽 이후 KCC에서 하승진과도 역할이 겹친 바 있다. 이후 서장훈이 인천 전자랜드로 이적해 '윈-윈' 사례를 낳았다. 함지훈-이종현이 이런 전례를 따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유 감독은 "이종현과 최준용 사이에서 뽑을 것"이라고 1순위 픽에 대한 전망을 밝혔다. 모비스 관계자도 18일 1순위 지명까지 고민을 해볼 것이라는 의견이다.

최준용을 뽑는다면 당장 모비스의 포지션 교통정리는 해결될 수 있다. 느리고 무거워 골밑에 적합한 함지훈에 가볍고 빠른 최준용은 궁합이 맞을 수 있다. 다만 최준용은 아직 병역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이종현의 골밑 위압감은 볼수록 매력적이다. 일장일단이 있다는 뜻이다.

과연 모비스가 남은 2주 동안 고민을 통해 어떤 결론을 내릴까. 남들이 보기엔 배가 불렀다고 투덜댈 수 있으나 모비스로서는 향후 10년 농사를 좌우할 선택이다. 만수 유 감독의 결론이 무엇일지, 농구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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