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 약한 싸움에 섣불리 뛰어든 것 자체가 잘못이었고, 그랬다면 재빨리 방향 선회를 해야 했는데 실기했으며, 이도저도 아니라면 기왕에 벌어진 싸움판에서 뒷심이라도 발휘해야 했는데 이조차 실패했다.
이정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는 전략 부재 속에 리더십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고, 주류 친박계는 내내 초강경 기류를 주도하다 여소야대의 쓰디쓴 현실을 체감하며 무너졌다.
투톱 지도부 간에도 뜻이 어긋나 좌충우돌하다 집권당으로서 신뢰를 잃었고, 급기야 입법부 수장에 대한 전무후무한 인신공격을 벌이다 역풍을 맞는 결정적 패착을 뒀다.
이처럼 명분과 실리 어느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하면서 지도부 책임론은 물론 강성 친박계에 대한 반발과 이에 따른 계파갈등 재연이 불가피해 보인다.
다만 지도부가 취임한 지 얼마 안되는데다 당 안팎의 사정이 너무 위중하다는 점에서 책임공방은 적어도 당분간 물밑 잠복할 가능성이 크다.
비박계인 수도권 3선 의원조차 "이번에 너무 큰 피해를 입어서 (서로 책임을 따지는) 당 내분에 들어갈 여유조차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4일부터 정상화되는 국정감사에서 미르·K스포츠재단이나 우병우 수석 문제 등 야당의 공격에 적극 대처하며 내부 결집력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이 대표는 전날 김성원 대변인을 통해 전달한 메시지에서 소속 의원들에게 "한 톨의 쌀알을 대패질 하는 집중력을 가지고 민생국감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새누리당은 이와 함께 정세균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 위반 혐의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당내 불만의 외부 배출구로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새누리당은 정세균 의장 사퇴를 요구하는 플래카드를 철거하는 등 일부 유화책에 나서면서도 직무유기 혐의 등의 형사고발은 취하하지 않았다.
물론 더불어민주당은 "절차상 하자가 전혀 없었다"며 응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지만, 새누리당은 국민의당을 지렛대로 삼아 공략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결국 거대 야당과의 일전에서 백기투항에 가까운 패배가 역설적으로 당내 분란을 지연시키고 있는 셈이다.
지도부마저 사실상 패배를 자인하는 마당에 일부러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한 비박계 3선 의원은 "당내 일부의 문제 제기는 있지만 국민적 시각에서 봤을 때는 징계 사안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불안한 평온은 마냥 지속되기 어렵다. 국감 과정에서 돌출 사안이 발생하거나 야당의 공세에 또다시 밀릴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여진이 엄습할 공산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