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제대로된 검증도 없이 기업을 위해 각종 인증 제도를 만들어 홍보거리를 제공하는 동안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묻혀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 시민단체 "애경 제품 피해자 182명, 사망자 39명"
애경은 화학 물질인 메칠클로로이소치아졸리논(CMIT)과 메칠이소치아졸리논(MIT)을 원료로 하는 가습기살균제 제품인 '가습기 메이트'를 지난 2002년부터 판매했다.
이 제품은 옥시레킷벤키저의 '옥시싹싹 가습기 살균제'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
이후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 사례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애경 제품을 사용했다는 피해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환경부가 발표한 '가습기 살균제 제품별 피해자 현황(1, 2차 조사, 판정 기준)'에 따르면 애경 제품만을 사용한 피해 신고자 중 3명이 폐 손상이 인정됐다.
5살 여아 박나원 양은 애경 제품만을 사용했다가 '폐 섬유화증'이 발견돼 기도를 절개하고 관을 삽입하는 수술을 받았다. (관련 기사 : "가습기 쓴 나원이…목에 구멍 뚫어 숨 쉬어요")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따르면 애경 제품을 사용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모두 182명, 사망자는 39명이다.
◇ 책임회피 애경, 공정위는 "시스템 잘 갖춘 기업" 칭찬
그러나 애경은 CMIT/MIT 성분이 폐섬유화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정부의 역학조사 결과를 들어 책임을 회피했다.
애경은 "SK 케미칼로부터 제품을 공급받아 판매'만'했을 뿐"이라며 변명했고, 검찰 수사를 받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피해자들의 고통을 모른척하고 있다.(관련 기사 : 애경 "화학물질은 원래 독성" 가습기 실험도 않고 궤변)
이처럼 피해자의 고통을 나몰라라하는 애경에게 지난 2015년 6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소비자 중심 경영(CCM) 마크' 인증을 내줬다. 심지어 애경은 자사 홈페이지에 이 인증 마크를 홍보했다.
'CCM 마크'는 소비자의 피해 구제· 권리 보호 등 소비자를 중심으로 경영 활동을 하는 기업에게 공정거래위원회가 그 인증 마크를 부여하는 제도다.
이에 대해 애경 측은 가습기살균제 문제에 대한 언급없이 "모든 기업 활동을 소비자 관점에서 하고 있어서 CCM 마크를 부여받았다"고 설명했다.
애경 측에 해당 마크를 부여한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CCM 마크를 보유한 기업은 소비자의 피해 구제에 대한 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다"고 거들었다.
CCM 마크 인증을 받은 기업에는 또 다른 가습기살균제 판매 기업인 '이마트'와 '콧물 정수기(이물질 정수기)'로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던 청호나이스도 포함돼있었다.
기업 홍보를 위한 인증 마크만 부여해줄 뿐 해당 기업에 대한 사후 관리나 감독은 전무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CCM 마크 심사 기준에 대해 "한국소비자원에서 신청을 받고, 심사위원들이 현장에 나가 실사를 하는 등 기준에 적합한지를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비자 중심 경영'을 하는 기업들은 "소비자의 감성과 가치를 중요시하는 기업들"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기업들이 소비자 중심 경영을 한다고 볼 수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답변을 머뭇거렸다.
해당 관계자는 "올해부터 소비자보호법 위반 등의 경우 인증을 취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업에 대해서는 재평가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투병 중인 나원 양 곁을 지키고 있는 어머니 김미향(34·여)는 "애경한테서 사과 전화 한 통을 못 받아봤다"며, "정부에서 애경한테 면죄부를 주고 있으니까 그런 상황이 가능한 거 아니겠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애경 측은 나원 양의 상황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피해자 182명, 사망자 39명이라는 숫자는 애경과 옥시 등의 제품을 함께 쓴 수치"라며 "가습기살균제와 관련한 소비자구제기금 협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