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한국의정사 30년:제헌의회에서 유신 말기까지'

신간 '한국의정사 30년:제헌의회에서 10대까지'에서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로 구성된 의회인 제헌국회부터 박정희 대통령 서거와 함께 막을 내린 제10대 국회까지 30여 년간의 의정사를 되돌아보았다. 새롭게 나라를 세웠으나 그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국회의 행보는 지금까지도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1945년 한국은 긴 일제의 속박에서 벗어났지만 미국ㆍ소련의 대립, 좌파ㆍ우파의 대립으로 혼란이 계속되었다. 결국 남북한 총선거를 실시하지 못하고 1948년 남한만의 단독 선거로 제헌국회를 구성하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한다. 제2대 국회는 개원 엿새 만에 6·25전쟁이 발발해 피난을 가기도 했으며 전쟁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던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의 재선을 굳히기 위해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을 추진했다. 하지만 그 개헌안이 부결되자 자신의 지지 세력을 동원해 부결 반대 민중대회를 벌이고 백골단, 땃벌떼 등 정체불명의 폭력 단체들이 국회의사당을 포위하고 야당 의원들을 위협했다.

처음부터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던 국가 원수들의 행보는 이후로도 계속되어 납치, 암살, 사사오입 논쟁, 불온문서 투입, 부정선거, 언론과 집회 방해, 정치 깡패와 군권 동원 등 각종 불법으로 의정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국회라는 이름은 있으되 알맹이가 없는 허수아비 국회였다. 실권자가 자신의 입맛대로 긴급권을 발동하면 하루아침에 온데간데없어지는 국회였으며, 국민이 뽑은 국민의 대변자가 아니라 행정부장이 임명하거나 추천해서 뽑은 의원들이 모여 행정부의 뜻을 받드는, 국회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그런 국회였다.

처음 국회가 개원한 이후부터 대한민국에서는 자유민주주의가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했었다. 역사에 가정이란 있을 수 없지만 ‘그때 그렇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많이 남긴 시간이었다. 암울한 군사 독재 정권에서 국민들의 투쟁과 노력과 희생으로 힘겹게 민주주의를 되찾기는 했으나 지금도 여전히 정치적 혼란은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재해 있다.

이 책은 대한민국 초기의 국회가 걸어온 길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그 30여 년간의 의정사 속의 부끄러운 면면들, 사회를 들썩인 주요 사건들을 들여다보면서 국회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고 국민 대표로서 자신의 자존심과 양심을 지키며 제 몫을 다하는 국회가 존재해 주기를 바라며 진정한 민주주의의 가치를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다.

책 속으로

- 의정사상 최대의 소란

야당계 의원들은 의사당 안에서 즉각 회의를 열고 사후 대책과 앞으로의 투쟁 방법 등을 논의하는 한편, 김선태 의원의 행방 탐지와 석방을 교섭하기 위하여 대표를 사방으로 보냈으나 그의 소재를 알 길이 막연했다. 그동안에 의사당 주변은 무장 경관대에 의해 삼엄한 경계가 펴졌다. 의원들은 밤 10시 반경까지 농성을 하다가 정부의 관권선거, 선거등록 방해 등 불법행위에 맞서 끝까지 투쟁할 것을 선포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해산했다. 장택상 주권투위 위원장이 발표한 성명서의 요지는 “(전략) 과거는 막론하고 5ㆍ15 정ㆍ부통령 선거와 현재의 지방선거에 있어 정부는 관권 및 기타 각종 폭력과 괴술(怪術)로 반대당의 선거등록을 방해하고 그 사용하는 방법이 민주주의를 역행할 뿐만 아니라 국민의 기본 권리, 즉 선거권 행사를 철두철미하게 방해해 왔다. 이것은 이 나라의 양심 있는 시민으로서 그대로 방치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 내용을 국민 앞에 호소하기 위하여 오늘 시가행진을 단행한 것이다. … 당국은 이 행렬을 제지했고 경찰의 공무집행 방해범이라는 명목으로 국회가 개회 중임에도 불구하고 김선태 의원을 백주에 불법 납치하였다. 이런 정부의 상습적 헌법 무시행위에 대해 우리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어떤 각오와 동의가 있을 줄로 믿는다. 이에 대한 대책을 철저히 강구해서 앞으로 계속 투쟁할 것을 선포한다.”라는 것이었다.
국회 본회의는 28일부터 이 문제를 가지고 의정사상 최대라고 할 만한 대단한 혼란을 야기하게 된다. 먼저 조순 운영위원장이 “어제 오후 김선태 의원이 현행범으로 긴급구속되었다. 국회의원의 신분에 관한 사고이기 때문에 이를 보고한다.”라고 보고를 했으며 이어 야당 의원들이 독기 어린 대정부 공격 발언을 쏟아부었다. 윤형남 의원은 “우리의 시위 행렬은 평화스러운 것이었으며 헌법의 보장 아래 법에 위배되는 행동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관은 우리의 시위 행렬을 방해하였으며 이 내무장관은 ‘저놈들 다 잡아라. 저놈들 놓치지 말라’라고 고함을 쳤다. 김선태 의원이 구속되어 갔는데 김 치안국장에게 김 의원의 소재를 물었더니 ‘잘 보호해 두었다’라는 대답이었다. 무슨 법률에 의해서 보호했느냐고 물으니까 ‘경찰직무집행법 제27조에 의해서 보호했다’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경찰직무집행법은 전문이 9조문밖에 없는 법률이다. 김 의원은 확실한 신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그를 긴급 구속한 법적 근거를 알 수 없는 것이며 치안당국의 무리하고 무식한 태도를 규탄하지 않는 한 이 나라 민주주의의 앞길은 암담하다.”라고 보고했다.
또 정중섭 의원은 “우리는 경찰관과 군인을 동원해서 공산당을 퇴치하지만 대한민국은 공산당을 제조하고 있다. 공산당은 불평과 불만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 자기의 권리가 부당하게 억압당할 때에 그들의 반응 심리는 공산당이 되는 코스로 나가게 된다. 대한민국이 이런 부패한 정치, 이런 불법적인 행정을 한다고 하면 공산당이 아니 될 줄 누가 얘기할 수 있겠는가. 시골에 가면 ‘농사는 지으나 마나, 선거는 하나 마나, 법률은 있으나 마나’ 이런 말을 어린아이들이 외치고 다닌다.”라고 정치의 부패와 불법행위를 공박했다.
이에 대하여 자유당 원내총무 김법린 의원은 “예산 심의가 대단히 긴박한 문제이므로 김선태 의원 건은 그 건대로 해결하고 먼저 예산안부터 상정하는 것이 좋겠다.”라는 엉뚱한 동의를 제출하였으며, 이어 남송학 의원이 예산안 심의의 긴급성을 강조하는 발언에서 “이와 같은 문제(시위 행렬 사건과 김선태 의원 연행 문제=필자 주)를 가지고 사사건건 의사에 대한 방해를 하며 지연을 시키고 이 나라의 국사를 혼란시키는 야당 의원들은 국민 앞에 떳떳한 일이라고 생각하는가.”라고 야당 측을 공격하고 나섰다. 그는 계속해서 야당 의원들이 지방선거에서의 야당계 후보들 선전을 위해 시위를 벌였으며 그러한 행동의 국내외적 선전 효과를 올릴 목적으로 일부러 미 대사관 앞에까지 가서 행렬을 멈추게 했다고 말함으로써 의사당을 벌집 쑤셔 놓은 혼란 상태로 끌고 갔다. 야당계 의원들이 단상으로 뛰어 올라가고 김두한 의원이 발언 중이던 남 의원을 단상에서 끌고 내려와 곤두박질을 시켜 남 의원의 옷이 찢기어 생채기가 나고 하는 등 의정사상 최대의 소란이 연출되었다. 많은 야당 의원들이 명패를 두들기며 소리를 지르는 가운데 남 의원이 다시 등단하여 “야당 의원들은 회개를 해야 돼…. 명패를 들고 오지 말고 칼 가지고 와… (중략) 내가 죽을 각오를 가지고 있다. 나를 죽여 이놈들아(속기록에서 발췌).” 하고 극도로 흥분해서 야당을 공격했다.

이형 지음 | 청아출판사 | 592쪽 | 3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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