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폭력, '경찰에선 이별, 검찰에선 합의'

2차 범죄 우려 크지만 합의로 끝나버리는 경우 많아

(사진=자료사진)
지난 4월 새벽, 대학생 신모(25) 씨는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의 한 술집에서 "그만 만나자"는 여자친구 A(23·여) 씨의 뺨을 수차례 때린 혐의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다.

한창 경찰조사가 진행되던 중 술에서 깬 A 씨는 돌연 "신 씨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며 조사를 멈출 것을 요구했다.

당시 A 씨는 취재진에게 "남자친구의 폭행이 계속될까봐 두려워 일단 경찰에 신고했는데, 지금은 처벌을 원치 않는다"며 심경 변화를 내비쳤다.

데이트폭력 혐의로 경찰조사를 마치고 검찰에서 합의를 본 경우도 있다.

지난 2월 새벽, B(43) 씨는 서울의 한 술집에서 이별을 통보한 불륜 상대 C(42·여) 씨에게 무차별적으로 폭행을 가했다.

사건을 데이트폭력으로 인지한 경찰은 B 씨를 폭행 및 협박 혐의로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이들은 재판에 넘겨지기 전 검찰에서 합의를 봤고 B 씨는 풀려났다.

경찰 관계자들은 "데이트폭력 당사자간 연락을 막아가면서 경찰조사를 끝마쳐도 검찰이나 법원에서 95% 정도가 합의를 보니, 경찰서가 오히려 이별중개소가 된 기분"이라고 목소리를 모았다.

◇ '항상 폭탄을 안고 가는 기분', 문제는 2차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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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간 합의하는 경우가 많다지만 데이트폭력은 계속 발생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데이트폭력으로 입건된 사례가 지난 2~3월 1806건, 4~5월 1661건, 6~7월 1705건으로 줄지 않고 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은 데이트폭력으로 상담을 신청하는 건수가 2014년 1591건에서 2015년 2096건으로 늘었고, 데이트폭력이 향후 가정폭력으로 이어지는 사례를 자주 접하고 있다고 밝혔다.

데이트폭력이 계속 발생하는 상황 속에서 2차 범죄의 위험성은 언제나 존재할 수밖에 없다.


경찰과 검찰 관계자는 "데이트폭력 가해자 중 60% 이상이 전과가 있었다"면서 "항상 폭행을 일삼던 사람이 친구나 애인도 폭행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말했다.

실제 합의를 했더라도 다시 상대를 더 집요하게 괴롭히는 재범 사례가 적지 않다.

지난해 5월, 보험설계사 D(43·여) 씨는 평소 폭력적이고 집착이 심했던 연인 문모(42) 씨를 폭행과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신고했다.

구치소에 수감된 문 씨는 '다시는 찾아가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와 함께 D 씨와 합의했고, 지난해 7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하지만 문 씨는 약속과는 달리 휴대폰을 3대나 개통해 협박 문자를 보냈고,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 신음 소리를 내는 등 끊임없이 D 씨를 괴롭혀 결국 올해 초 다시 구속됐다.

경찰 관계자들은 "데이트폭력 당사자들이 검찰조사에서 합의하거나, 법원에서 진술을 번복하면 형사처벌이 막히게 돼 향후 피해자 보호조치 자체가 무력화 되는 일이 종종 생긴다"면서 "항상 '폭탄'을 안고 가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 법원·검찰도 뚜렷한 방법 없는 상황

그렇다고 해서 법원이 당사자간 합의를 막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서울의 한 지방법원에서 근무하는 판사는 "형사소송법상 재판 당사자간 연락을 금지하는 규정이 없고, 법원이 합의를 막을 권한도 없다"면서 "법원이 합의에 간섭하면 법원 공정성에 오히려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에서도 데이트폭력만 따로 전담하는 부서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데이트폭력 개념부터가 모호해 따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가정폭력은 특별법이 있어 합의를 해도 법원에서 교육프로그램 이수 등 명령이 가능하지만 데이트폭력에는 특별법이 없어 사후 관리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건국대 경찰학과 이웅혁 교수는 "외국은 '가정 내 폭력(domestic violence)'이라고 해서 법률혼과 사실혼 관계 외 데이트관계에서의 폭력도 가정폭력으로 보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도 가정폭력의 개념을 다시 정의해 법률상 데이트폭력 사후교육이나 쉼터 제공 등이 가능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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