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변화는 '대한민국은 지진의 안전지대'라는 말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동안의 통념은 한반도는 환태평양 지진대, 일명 '불의 고리'에서 빗겨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1978년 관측 이래 가장 큰 규모 5.8의 지진과 1주일 동안 4백차례가 넘게 계속된 여진은 지진에 대한 한국민들의 인식을 바꾸는 일대 전기(轉機)가 됐다.
더욱이 언제 어디서 얼마만큼의 규모로 지진이 발생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한계가 공포와 불안의 강도를 더욱 키우고 있다.
실제로 경주 시민들은 지난 주 불안감 속에 뜬눈으로 밤을 꼬박 새며 추석 명절을 거꾸로 쇠다시피 했다.
'한반도 땅 속은 과연 어떻게 뒤틀렸는지', '12일 본진(本震)은 어느 단층에서 발생했는지', '19일 지진은 여진(餘震)인지 새로운 지진에 앞선 전진(前震)인지', '여진이라면 앞으로 얼마나 계속될지…' 그 누구도 장담을 하지 못하는 데 지진의 무서움이 자리한다.
하지만 지진이 아무리 천재지변(天災地變)이라 하더라도 '노바디 노우스(Nobody Knows)'가 전가(傳家)의 보도(寶刀)가 될 수는 없다.
앞으로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할 수 있지만 그만큼 더 철저한 대비에 신중을 기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춰 언론의 경쟁적 재해 재난 보도가 오히려 불필요한 공포와 불안을 야기하지 않았는지도 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19일 밤 경주 여진 발생 소식에 공중파와 종합편성채널 등이 긴급 특보방송을 내보냈지만 현장의 구체적이고 생생한 정보 전달은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재난방송은 '보여주기'가 아닌 '알려주기'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피해지역 주민들을 위한 정보전달이 우선돼야 하는 것이다.
국내 재난정보미디어 전문가인 선문대 이연 교수는 "언론이 지진의 규모와 피해상황을 전달하는 단순한 보도기능을 넘어 행동지시와 안전정보를 전달하는 방재기능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쩌면 이번 경주 지진은 발생해서는 안될 더 큰 재앙의 경고이자 철저한 대비를 위한 기회일 수 있다.
위기관리는 불시에 일어나는 긴급사태를 사전에 인지 예방하고, 사태발생 이후에는 신속한 대응으로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수십년이 걸리는 장기과제이지만 활성단층에 대한 국가 차원의 연구와 지도제작에 즉각 착수해야하고, 조기(早期) 지진경보 시스템 구축과 원전에만 의존하는 에너지 정책의 전환 등에 대한 고민이 병행돼야 한다.
위기관리학자인 이안 미트로프의 위기관리 5단계에서 마지막은 '학습과 교훈'이다. 경주 지진에서 얻은 생생한 교훈을 철저히 학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