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정부·여당의 대북 강경발언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북한은 마치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을 방불케 하는 날선 비난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특히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 지도부는 ‘핵무장론’에 다시 불을 지폈는데요.
그래서 우리나라의 핵무기 개발 시도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 박정희 "핵개발이 88%25 이상 완료됐다"
원자력 개발에 착수한 이승만 전(前) 대통령은 핵무기 개발에도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이 전 대통령이 1957년 11월 윤세원 당시 문교부 기술교육국 원자력과장을 불러 "우리도 원자무기를 만들 수 있겠느냐"고 직접 물어봤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러자 미국은 '핵우산' 보장 및 외교적 압박을 가했고, 우리나라는 1975년 4월 23일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했습니다.
그렇다고 핵무기 개발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1979년 2월 핵무기가 88% 이상 완성됐고, 1983년에는 완성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하지만 같은해 박 전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숨지는 10·26사건으로 핵무기 개발은 사실상 끝났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미국으로부터 정권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 핵무기 개발에 소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83년 재처리된 플루토늄을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제출해 핵무기 개발은 공식적으로 종료됐죠.
이후 노태우 정권이 1991년 남북이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하면서 주한미군의 전술핵도 철수됐습니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핵무기 개발은 2004년 노무현 정부 시절에 다시 논란이 됐는데요.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0.2g의 우라늄 농축 실험이 포함된 실험을 했다며 IAEA가 사찰을 벌인 것입니다. 정부는 이를 인정하고 자진신고를 통해 핵투명성을 다시 인정받았습니다.
◇ 북한의 핵실험마다 터져나오는 '핵무장론'
2006년 10월 9일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핵무장론'이 다시 제기됩니다.
2009년 5월 25일 2차 핵실험과 2010년 12월 노동신문의 "조선반도의 핵전쟁 불구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 '우리민족끼리'의 "조선전쟁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핵참화" 위협 이후에는 '핵무장론'이 더욱 확산됩니다.
한나라당 원유철 당시 국회 국방위원장과 자유선진당 조순형 당시 의원, 미래희망연대 송영선 당시 의원 등이 2011년 2월 국회에서 핵무장을 주장한 것인데요.
원유철 의원은 북한의 4차 핵실험(1월 6일) 이후인 올해 2월 새누리당 원내대표로서 나선 국회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도 핵무장을 공식화해 논란이 됐습니다.
마치 기다렸다는듯이 계속되고 있는 '핵무장론' 발언들, 목에 핏대를 세우기 전에 이게 과연 우리나라의 안전에 필요하고 효과적인 것인지 진지하게 따져봐야하는 게 우선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