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문원 서리 가운데 문식이 뛰어난 사람들은 종종 벌열 가문에서 주요한 문서를 처리하거나 주공의 지방관 행차 수행, 문화생활 등을 함께 향유하기도 했다. 조수삼 또한 재능을 인정받아 당시 세도가였던 풍양 조씨 가문의 조인영(趙寅永), 조만영(趙萬永) 형제의 아낌을 받았고, 이들 형제를 통해 김정희(金正喜) 등 당대 세도가들과도 자리를 함께할 기회를 얻었다. 한편 자신의 학문적 성향과 처지를 잘 알아준 이덕무와는 사승 관계로 지냈으며, 비슷한 신분의 사람들끼리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를 결성해 평생을 함께 동고동락했다.
조수삼을 인정한 사람은 단지 조선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았다. 조수삼은 연행을 계기로 청나라 문인인 정진갑(程振甲), 유희해(劉喜海), 무공은(繆公恩), 오숭량(吳嵩梁)을 만나 시와 서신을 주고받으며 특별한 인연을 만들었다. 조수삼은 중인이라는 외피에 가려진 자신을 있는 그대로 알아주는 벗을 만나면서 진정한 여행의 의미를 발견했다. 이처럼 그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평생 교유하면서 시와 문을 즐겼고, 지인들의 삶과 각자의 개성을 자신의 작품에 녹여낼 수 있었다.
조수삼은 역관이 아님에도 서기나 반당, 종사관 등의 자격을 얻어 평생 동안 여섯 번이나 연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멀리 밖으로 나가서 노닐고픈 꿈’을 가졌던 조수삼에게 연행은 인생에 커다란 자극이 되었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조선에서는 볼 수 없었던 화려한 잔치와 거리 풍경, 연희 등 처음 북경을 접하고 느낀 경이로움은 조수삼의 인식을 바꾼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의 본문에 인용된 여러 편의 연행시를 통해서 조수삼이 보고 듣고 느낀 북경의 풍광을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다.
한편 중국 연행 이후 더 넓은 세상이 궁금했던 조수삼은 명대의 세계 지리서 《방여승략(方輿勝略)》 등 금서를 읽으며 ‘상상 속의 견문’을 시도했다. 조수삼은 이를 토대로 일본, 비사나(오키나와), 고리(인도의 캘리컷), 응다강(인디아), 섬라(태국), 물누차(베네치아), 돌랑, 야차, 홍모국(네덜란드) 등 자신이 가고 싶은 나라를 뽑아 정보를 실은 〈외이죽지사〉를 창작했다. 직접 여행할 수 없는 나라들의 다양한 문화를 향유하고, 그들과 동시대에 공존한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것은 그에게 무척 매혹적인 일이었다.
신분제의 동요가 가장 심했던 조선 후기를 언급할 때 중인층 지식인은 계층에 따른 박탈감이나 소외감 혹은 그로 인한 분노, 사대부 문인들의 아류라는 측면에서 관습적으로 조명되어 왔다. 하지만 저자는 여행을 통해 중인층 지식인이 꾸었던 꿈, 그들이 추구하고 상상했던 이상을 제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조선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여행이란 사회적 제약에서 벗어나고 싶은 열망과 자아를 찾고자 하는 탐색의 과정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조수삼은 조선의 ‘주변인’이었다. 그러므로 ‘외부’ 존재를 인정하는 일은 바로 조선 후기를 중인으로 살고 있는 자신을 인정하는 일과 다름없었다. 멀리 여행하며 자신을 찾고자 하는 바람은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자리 잡고 있는 동일한 꿈이다. 조수삼의 특별한 여행 이야기는 각박한 세상을 버텨야 하는 현대인에게 필요한 ‘위로’와 ‘여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책 속으로
조수삼은 남자로 태어나 천하에 뜻을 두지 못하는 한미한 처지임을 한탄했는데, 이는 연행이라는 좋은 기회를 접하기 이전 그를 괴롭혔던 갈등의 양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젊은 시절이었으므로 포부가 컸을 테지만 그 포부를 실현하기는 여의치 않았다. 그는 20대에 가까운 곳으로 유람을 간다거나, 지인의 서재를 방문하는 것 외에는 대부분 본인의 서재에서 독서와 저술에 몰두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 속내에는 자신이 처한 공간들을 벗어나, 자신에게 존재의 가치를 부여해줄 원유(遠游)의 꿈을 지니고 있었다. _ 61쪽, 〈제2부 제1장 동아시아의 허브를 체험하다〉 중에서
전대의 선학(先學)들이 연행을 다녀와 북학의 열풍을 몰고 왔다면, 19세기로 들어서면서 그 관심의 축은 청나라 문인 학자들과의 교유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특히 재능을 품고도 신분적 한계에 얽매였던 서얼, 중인들에겐 더욱 절실했다. 조수삼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무공은과의 교유는 조수삼 만년에 원유에 대한 열망을 자극하는 중요한 일이었다. 조선의 중인이라는 ‘외피’에 가려진 자신을 있는 그대로 알아주는 지음을 만나는 일. 이것이 조수삼이 연행에서 찾으려 했던 ‘의미’였다면, 무공은과의 만남은 이를 충족시켜주기에 충분했다. _ 118-119쪽, 〈제2부 제3장 만리타국에서 나를 알아주는 이를 만나다〉 중에서
17세기부터 시작된 천문 지리서 등의 서양 학술 서적과 서구식 세계지도의 보급은 지식인들을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점차 벗어나게 해주었다. 지리서 안에는 지도를 첨부한 경우도 있는데 《삼재도회(三才圖會)》 등에 실린 〈산해여지전도(山海輿地全圖)〉와 같은 것은 조그만 책자 안에서 넓은 세계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만들었다. (중략) 조수삼은 지구가 하나의 ‘바둑돌’이나 ‘탄환’에 불과하다고 했다. (중략) 세상 밖으로 유통이 금지되었던 《방여승략》은 아이러니하게도 조수삼에게는 ‘세계’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 _ 147-149쪽, 〈제3부 제1장 금서를 통해 본 세계〉 중에서
거대한 땅덩어리의 한 점에 불과한 조선 땅. 거기서도 제대로 꿈을 펼치지 못하는 자신의 심회를 책 속에 풀어낸 〈외이죽지사〉. 조수삼은 《방여승략》에 펼쳐진 세계에서 자신이 가보고자 하는 나라들을 뽑아 또 하나의 세계를 빚는다. 그는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인도, 유럽의 나라들을 종횡으로 오간다. 한편으로는 과연 이런 나라들도 있을까 하는 이질감과 호기심이 교차한다. 조선의 좁은 골목에서 즐긴 그의 와유(臥遊)에 동행해보는 것은 어떨까. _ 158쪽, 〈제3부 제3장 이런 나라, 저런 나라〉 중에서
김영죽 지음 | 역사의아침 | 208쪽 | 1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