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김모(35) 씨가 A 자동차 정비업체 대표에게서 들은 황당한 말이다.
올해 2월 SUV차량과 충돌해 자신의 승용차 뒷좌석 등이 크게 파손된 김 씨는 지난 3월 서울 성동구에 있는 자동차 서비스센터에 수리를 맡겼다.
하지만 한 달 뒤 돌려받은 차의 도색 상태가 엉망인 것을 보자 화가 난 김 씨는 정비업체를 옮겼다. 그리고 그곳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센터필러는 승용차의 좌·우·중앙부에 설치돼 지붕을 받치고 차 문을 유지하는 일종의 '척추' 역할을 하는 주요 부위다.
김 씨는 "큰돈을 주고 정비를 맡겼는데도 이런 부실 정비를 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라면서 "매뉴얼대로 안전하게 자동차를 수리할 수 있는 곳을 찾기 힘든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탄식했다.
◇ 누굴 위한 '수리 매뉴얼'?…장비 안 갖춘 공장 수두룩
자동차관리법 32조 2항에 따르면, 자동차 제작자는 자동차 정비 매뉴얼 등 정비·수리와 관련된 정보와 자료 등을 정비업체에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정작 정비업체는 제공된 수리 매뉴얼에 따라 차량을 정비·수리할 법적 의무가 없다.
관련법이 미비하다 보니, 철판 재질에 따른 알맞은 용접 장비를 갖추기는커녕 파손된 차체를 측정하는 차체 계측기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실제로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경기도 안양에서 차량 정비업체가 밀집된 지역을 직접 방문한 결과, 4개 정비업체 모두 차체 계측기와 제대로 된 용접장비 등을 갖추지 않았다.
공장 관계자는 "수평자나 눈대중으로 차의 수평을 맞추고 있다"면서 "가격이 비싸 계측기나 여러 용접도구를 갖추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털어놨다.
도장(塗裝)이나 판금(쇠를 피고 용접하는 행위)이 가능한 1~2급 정비공장 5824개(2015년 12월 기준) 가운데 차량 계측장비를 갖춘 곳은 단 62곳에 불과하다. 즉, 1.1 % 공장만이 정확한 차량 계측을 통해 정비하고 있는 것이다.
수평자나 눈대중으로 차의 수평을 맞추는 등 정비업체에서 '주먹구구'식으로 수리를 하고 있지만, 국토교통부는 관련 법이 없어 단속할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반드시 매뉴얼에 따라 수리해야 한다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국가 자격증 등을 보유한 정비사가 알아서 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 '안전' 등한시된 차량정비…"한순간에 죽는다"
정확한 계측 작업을 통해 차체 수평이나 손상 정도를 파악해야만, 정확한 수리가 가능해 신차 상태처럼 돌아갈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차량의 수평이 뒤틀리게 되면 타이어 편마모 현상이 나타나고, 급정차할 경우 차량이 전복될 가능성이 높다.
철판 재질에 따라 알맞은 방식의 용접도 매우 중요하다. 차량을 보호하는 철판이 단단해야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제대로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운전자 등 탑승객을 감싸는 부분인 '세이프티 존'(충돌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는 공간)은 강도가 높은 '초고장력강판'을 사용하는데, 이 부분을 수리할 때에는 반드시 '양면저항 스포트용접기'를 사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일반 '산소용접'을 하게 되면, 용접 부위가 쉽게 부러지거나 떨어져 외부의 충격을 흡수할 수 없다.
20년째 자동차 정비업에 종사하고 있는 김병진(45) 씨는 "초고장력강판을 일반 산소용접으로 수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매우 위험한 방법"이라며 "사고 시 강판이 끊어져 운전자를 찌르거나 에어백 센서를 망가뜨리게 되면, 한순간에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대림대 김필수 자동차학과 교수는 "자동차 기술이 급발전하면서 정비작업도 상당히 복잡해지고 어려워졌다"면서 "정비사의 경험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매뉴얼에 따른 원칙적인 수리가 가능하도록 하는 법안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