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그의, 그에 의한, 그를 위한 청와대

(사진=자료사진)
여기서 그는 대통령도 국민도 아니다. 특정인 한 사람을 가리킨다. 그는 '막강 실세'로 불리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적어도 우 수석 거취와 관련해 대통령의 사람들은 분명하고도 확고한 입장을 견지한다. '우병우를 흠집내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을 흔드는 것'이라고….

한 달이 넘도록 각종 의혹을 제기하는 언론, 경질이나 자진 사퇴를 촉구하는 정치권 분위기,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는 민심 등은 전혀 청와대의 고려 대상이 아닌 듯하다.

집권 4년차 레임덕을 걱정하는 대통령의 사람들은 오로지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눠 우 수석 관련 사안을 해석하고 규정짓는다.

내 편이라고 생각했던 대통령직속 특별감찰관도 우 수석을 곤경에 빠트리면 그 순간 네 편이 되고 만다. 임기 3년이 보장되고 직무상 독립적 지위를 갖고 있는 특별감찰관이라도 예외일 수 없다는 식이다.

청와대는 19일 '국기 문란', '중대한 위법행위'라는 가시 돋힌 수식어를 동원해 가며 우 수석을 검찰에 수사의뢰한 이석수 특감(特監)을 몰아부쳤다.

이석수 감찰관이 한 언론사 기자와 나눈 대화가 특별감찰관법 22조, 누설금지 조항을 위반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인데, 사실상 검찰에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다.


그러면서도 청와대는 앞으로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될 우병우 수석의 거취에 대해서는 일언반구(一言半句)도 하지 않았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견월망지(見月忘指)'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면 달을 보기 위해서는 손가락은 잊으라는 뜻. 즉 손가락은 달을 가리키고 있는데 달은 쳐다보지 않고 정작 손가락만 보면서 '손가락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하는 꼴이다.

우 수석의 각종 비리 혐의보다 이 특감의 발언내용이 더 큰 문제라는 식으로 '우병우 살리기'를 위해 '이석수 흔들기'에 나선 청와대의 우격다짐에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처음부터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감찰에 착수한 이석수 특감은 '우병우 살리기'에 나선 사람들의 집요한 방해 때문인지 우 수석의 직권 남용과 횡령 혐의에 대해 고발이 아닌 수사의뢰 조처를 하는데 그쳤다.

실제로 이 특감이 한 언론사 기자와 나눈 대화 내용에 따르면 감찰활동에 많은 어려움이 실재했음을 토로하고 있다.

"경찰에 자료를 달라고 하면 하늘 쳐다보고 딴소리를 한다. 경찰은 민정(수석) 눈치 보는 건데 민정에서 목을 비틀어 놨는지 꼼짝도 못한다. 우 수석이 아직 힘이 있다. 검찰이든 경찰이든 째려보면, 까라면 까니까…."

만일 이 특감의 말이 사실이라면 청와대의 특감 업무 방해는 명백한 위법행위가 된다.

이 특감과 한 언론사 기자의 대화 내용이 어떤 경로를 통해 다른 언론사에 전해졌는지, 또 이 특감의 발언내용이 과연 위법적인 것인지는 앞으로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지게 되겠지만 우 수석의 비리 의혹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다.

따라서 지금 당장 이뤄져야 할 일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로서 우 수석이 도덕적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 검찰수사를 받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 수석 의혹 파문은 시간이 지나면서 권력 내부의 현재와 미래 세력간 대립과 충돌에 따른 이른바 '리크 게이트(leak gate)'로 변질되는 양상이다.

최근 새누리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불거졌던 김성회 녹취록 파문이나 정윤회 문건 파동 당시 K-Y 수첩 사건 등은 음습한 공작의 냄새를 풍기며 집권세력 내부의 파열음을 낳았다.

이번 우 수석의 거취 논란도 똑같은 전철을 밟으면서 새누리당내 친박과 비박의 대립구도로 치닫고 있다. 결국 우 수석의 버티기는 현 정권에 마이너스가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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