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우리 대표팀은 앞선 3종목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낸 터라 목표했던 전 종목 석권에 꼭 하나만을 남긴 상황. 그러나 남자 개인전 결과가 썩 좋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지난 9일 세계 1위 김우진(24 · 청주시청)이 32강전에서 패배를 당한 데 이어 이날 막내 이승윤(21 · 코오롱엑스텐보이즈)도 8강전에서 덜미를 잡혔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남은 선수는 구본찬(23 · 현대제철). 세계 랭킹 2위인 데다 지난 7일 단체전에서 모두 6발 모두 10점을 쏠 정도로 쾌조의 컨디션을 보인 구본찬이었지만 강한 돌풍 등 변수가 많아 안심할 수 없었습니다.
실제 경기도 아슬아슬했습니다. 8강전에서 구본찬은 테일러 워스(호주)와 슛오프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습니다. 특히 1점 차로 뒤진 5세트 마지막 발에서 상대가 8점을 맞추면서 구본찬은 기사회생, 9점을 맞춰 끌고 간 슛오프를 이겼습니다. 4강전에서도 구본찬은 미국 양궁의 전설 브래디 앨리슨과 역시 슛오프 끝에 승리했습니다.
잇따라 위기를 넘긴 구본찬은 결승에서 장 샤를 발라동(프랑스)을 7-3(30-28 28-26 29-29 28-29 27-26)으로 누르고 신화 창조의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역대 올림픽 최초의 4개 종목 전관왕 석권의 순간이었습니다.
이번 대회 한국 양궁은 남녀 단체와 개인전을 모두 휩쓸었습니다. 남자 단체전 금으로 스타트를 끊은 한국 양궁은 다음 날 장혜진(29 · LH)과 기보배(28 · 광주시청), 최미선(20 · 광주여대)이 여자 단체전에서 금빛 바통을 이어받았습니다.
12일 개인전에서 장혜진은 역대 한국 여자 선수로 7번째 2관왕에 올랐고, 구본찬이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한 겁니다. 구본찬은 한국 남자 선수 최초 2관왕이라는 타이틀까지 얻었습니다.
대위업을 이룬 6명 선수들과 남녀 코칭스태프는 물론 아낌없는 지원을 해준 정의선 대한양궁협회장, 한국 양궁 대부 장영술 협회 전무 등 관계자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서로를 격려하며 기념촬영을 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몰랐습니다.
구본찬은 정 회장의 목에 자랑스러운 금메달을 걸어줬고, 정 회장은 자랑스러운 금메달리스트와 뜨거운 악수를 나눴습니다. 정 회장은 "말이 4관왕이지 이루기가 쉽지 않은데 선수들이 정말 대단한 일을 해냈다"면서 "이후에도 꾸준히 지원을 하겠다"고 뿌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후 선수들은 정 회장과 문형철 총감독을 헹가래치며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이후 한국 양궁이 이룬 역사적 현장에 함께 했다는 증거를 남기는 순서가 이어졌습니다. 바로 가장 중요한 사진 촬영입니다. 태극전사들 먼저, 여기에 정 회장을 비롯해 문 총감독과 남자 대표팀 박채순 감독과 최승실 코치, 여자 대표팀 양창훈 감독과 한승훈 코치 등 지도자들이 뭉쳐 역사에 남을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현지 중계를 마친 방송사 캐스터와 해설위원들, 현장 기사를 전한 취재진까지 함께 했습니다. 문 총감독 등 코칭스태프는 "모두들 도와주셔서 이런 업적을 이룰 수 있었다"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온 봉사자들은 한국 선수단과 열정적인 포즈로 촬영에 임했습니다. 특히 이들은 촬영을 하는 동안 "따봉, 코리아!(좋아요, 한국)"를 외치며 세계 최강 한국 양궁에 대한 경의를 표했습니다. 이후 이날 금메달을 따낸 구본찬의 성인 "구! 구!"를 연호해 챔피언에 대한 예우를 했습니다.
그 다음은 각개전투. 자원봉사자들과 관계자, 관중 등이 세계에서 가장 활을 잘 쏘는 사람과 그들을 가르친 스승을 찾아 너도나도 사진을 찍었습니다. 너무 많은 요청을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었습니다.
한참이 지나 축제가 끝난 뒤 모두 사라진 경기장. 이제는 맛난 음식이 함께 하는 또 다른 잔치를 위해 모두들 총총히 떠났습니다.
구본찬과 김우진, 이승윤이 8년 만의 단체전 금메달을 합작한 뒤 부둥켜 안았던 곳. 장혜진과 기보배, 최미선이 나란히 시상대에서 애국가가 나오는 동안 귀여운 장난으로 까르르 웃었던 곳.
김우진과 최미선의 믿을 수 없는 탈락에 아픔의 눈물이 흘렀던 곳. 장혜진이 기보배와 우정의 4강전을 치른 뒤 마침내 또 다시 시상대 맨 위에 올라 이번에는 웃음 대신 눈물을 머금었던 곳.
그리고 마지막으로 구본찬이 힘든 승부 끝에 마침내 한국 양궁의 새 역사를 쓴 뒤 멋진 미소를 지었던 곳.
양궁의 마지막 경기가 끝난 만큼 원래대로 삼바 축제를 위한 장소로 돌려놓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던 겁니다. 선수들이 매섭게 과녁을 노려보며 화살을 겨눴던 사대는 물론 임시 관중석까지 떼어내는 작업이 한창이었습니다.
위대한 업적이 이뤄진 한국 양궁의 역사적인 경기장이 곧바로 철거되는 모습을 보니 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치 한바탕 제대로 축제를 치르고 난 뒤의 허무함이랄까요. 신기루처럼 방금 전의 활발했던 잔치가 사라지는 듯한 기분.
또 양궁 경기장 시설물은 사라졌지만 장소는 남아 있습니다. 이제는 양궁 경기가 아닌 정열의 삼바 댄스가 펼쳐질 삼보드로무. 수년 혹은 수십년이 지난 뒤 다시 이곳에 온다면 2016년 8월 지구 정확히 반대편 한국 양궁이 리우에서 올림픽을 완벽하게 제패하고, 이를 기리기 위한 대축제가 여기 어디쯤에서 벌어졌을 거라고 추억할 수 있지 않을까요?
p.s-경기 취재와 인터뷰, 기사 작성까지 마치고 적막에 휩싸인 경기장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타사 기자들과 함께 늦은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나섰습니다. 일주일 동안 나름 단골이 된 브라질의 평범한 레스토랑. "여기도 오늘이 마지막"이라며 제각기 주문을 하고 식사를 마쳤습니다.
그 뒤 다음 행선지로 가기 위해 떠나는 우리 취재진에게 식당 맞은 편 놀이터에서 놀던 브라질 소년들이 아는 척을 합니다. 마치 양궁의 활시위를 당기는 듯한 동작을 취하면서 뭐라고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는데 뜻은 통하기 충분했습니다.
비록 경기를 직접 보진 못했을 테지만 양궁 경기가 여기서 열렸고, 너희가 바로 그렇게 활을 잘 쏜다는 한국이란 나라의 취재진이 아니냐. 뭐 이런 뜻 정도가 아니었을까요?
또 경기장에서 대회를 치렀던 브라질 자원봉사자, 관계자들은 한국 양궁의 위대함을 직접 봤습니다. 어쩌면 한국 양궁의 업적은 입에서 입으로, 리우에서 위대한 전설로 이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