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새누리당 차기 당 대표에 선출된 이정현(3선) 의원의 수락연설은 미세한 감정의 떨림이 느껴졌다.
전남 곡성 출신에 순천이 지역구인 이 의원은 호남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새누리당 대표로 선출되는 파란을 일으켰다.
그의 정치 역정에서 ‘이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 의원은 당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호남에서 잇따라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지역주의의 높은 벽 앞에서 번번이 무너졌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광주 서구을에 출마했지만 720표(0.7%)의 참담한 성적표를 거뒀고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치러진 18대 총선에서야 비례대표로 원내 입성했다. 이 의원은 19대 총선 때 다시 광주 서구에서 출마해 40% 가까운 득표율을 얻었지만 역시 당선에는 실패했다.
그러던 것이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치러진 2014년 7.30 재보선에선 첫 지역구(순천) 당선에 성공했고 20대 총선에서도 수성에 성공하며 당권 도전을 넘볼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이 의원이 당 대표 선거에 뛰어들었을 초기에는 당선 가능성을 높게 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호남 출신이라는 지역적 한계 외에도 명문대 출신 엘리트 중심의 보수정당에선 여러 모로 비주류였고 다른 후보들에 비해 선수(3선)마저 낮았다.
1958년생인 그는 동국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85년 전남도지사를 지낸 당시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총선캠프에 합류하면서 정치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3선 의원 경력을 제외하면 당에선 한나라당 수석 부대변인과 새누리당 최고위원을, 그외에는 청와대 정무수석과 홍보수석을 역임한 정도다.
판사나 유명 방송인 출신에 4~5선 경력을 자랑하고 원내 대변인이나 정책위의장, 장관 등을 역임한 경쟁 후보들에 비춰 내세울 게 별로 없는 셈이다.
밀짚모자에 배낭 하나 둘러맨 채 발로 뛰는 선거운동으로 바닥 표심을 훑었고, 이 과정에서 ‘금수저’는커녕 ‘흙수저’에도 못미친다는 ‘무(無)수저’를 자처한 것이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의원의 당선 배경에는 ‘오더(지시) 투표’로 불리는 주류 친박계의 직간접적인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친박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데는 특유의 우직한 뚝심과 그에 따른 전국적 인지도 확보가 결정적으로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는 이날 수락연설에서 “비주류, 비엘리트 소외지역 출신이 집권여당 대표가 될 수 있는 대한민국은 위대한 기회의 땅”이라며 “이 가치를 지키는 새누리당을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한때 ‘박근혜의 복심’으로 불리며 참모형 정치인의 틀에 갇혀있었지만 이제 새누리당 당권을 손에 쥠으로써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게 됐다.
그는 당선 일성으로 고질적인 계파 청산과 함께 낡은 정치를 쇄신하는 ‘정치 혁명’을 역설했다.
그 스스로가 지역주의를 극복한 산증인으로서, 첫 호남 출신 새누리당 대표로서 당을 환골탈태하는 비주류 신화까지 성공시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의원의 당내 기반이 뚜렷치 않은데다 당내 핵심 역할을 맡아본 경험도 부족한 편이기 때문에 그의 포부와 달리 얼마나 정치적 통합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현실적으로 계파 갈등이 분명히 존재하고 이번 선거 과정에선 오히려 더욱 악화된 측면이 있다. 친박 지지를 바탕으로 당선된 이정현 대표 체제의 앞길이 그리 순탄치는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