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하나 하실래요?”
“……”
“한 달 동안. 지금 당장 시작하죠. 하루에 10분만 생전 하지 않았던 일을 해보세요.”
“네?”
“뭐라도 좋아요. 지난 35년 동안 한 번도 하지 않은 일이면 됩니다.”
“36년이에요.”
“그래요, 36년. 새로운 일이면 뭐라도 좋아요.”
“한 달 동안.”
“그래요”
“10분 간.”
“10분 간.”
“그게…… 효과가 있을까요?”
“당신에게 달렸어요. 게임은 진지한 사람들이 하는 겁니다. 일단 게임을 할 생각이 있으면 단 하루도 거르면 안 됩니다.”
“한 달이 지난 다음에는?”
“뭐가요?”
“한 달 후에 내가 얻는 게 뭐죠? 예전처럼 다시 살아갈 힘이 나나요?”
“그건 한 달 후에 말하기로 해요, 키아라 씨. 부탁인데, 게임을 하는 동안에는 게임에 집중하고, 속이지 말아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안녕히 계세요.”
나는 더 이상 잃을 게 없었다. 그게 문제이긴 했지만.
이번 기회에 게임이나 한번 해보자.
매일 10분 간, 게임을 하는 것이다.
소설가 키아라의 삶의 축은 한때 든든하고 분명했다. 따뜻하고 고즈넉한 고향집, 열여덟 살 때부터 사랑했던 남편, 열정을 담아 한 주 한 주 써내려갔던 칼럼. 그녀의 일상은 꼭 맞아들어 그녀를 그녀로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너무 간단히 그 일상은 바스러졌다. 공사 때문에 로마의 낯선 거리로 이사를 왔고, 적응하지 못해 남편과 곧잘 다투었다. 남편은 아일랜드로 출장을 갔고, 다른 여자를 만나서 돌아오지 않았다. 팔 년 간 써온 칼럼은 리얼리티쇼 우승자에게 빼앗겼다.
갑작스레 모든 것을 잃어버린 키아라. 매주 상담을 받지만 변해야 할 의욕도, 이유도 없다. 그런 그녀에게 정신과 의사 T박사는 10분 게임을 제안한다.
내 삶이 막다른 골목처럼 여겨질 때, 무기력하고 지루한 일상에 지칠 때, 혹은 가장 소중한 사람이 자신을 떠났을 때나 당신이 그토록 사랑하고 몰두하던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키아라는 T박사의 제안을 따라 10분 게임을 시작한다. 하루에 한 번, 10분,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일을 시도하는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이라고 해도 키아라의 10분 게임에 대단한 모험은 별로 없다. 그녀가 하지 않았을 뿐, 누구라도 할 수 있고 누군가는 늘 하고 있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녀의 도전들은 소소하고, 유치하고, 자주 성공하지도 못한다. 요리라곤 모르던 그녀가 최초로 만들어 본 팬케이크 중 몇몇은 절대 팬케이크 같지도 않았다. 아이처럼 거꾸로 길을 걸어보기도 한다.
그렇지만 멈춰있던 그녀의 인생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녀는 지칠 때까지 어설픈 몸사위로 힙합 동영상을 따라해 보기도 하고, 처음으로 엄마의 일상은 어떤 것인지 물어보고, 풍등을 손수 날리며 홀연한 아름다움에 잠시 위로받는다. 십자수 놓기는 끔찍한 실패였지만 수예점 노파가 키아라의 돌아가신 할머니를 닮았다는 걸 알게 된다. 지긋지긋해하고 원망하던 로마에 이웃이 생긴다. 난민 소년 아토의 미소에 잠시 아픔이 멎기도 한다.
10분 게임을 하며 키아라는 이제 아침에 일어나면 불행에 매달리는 대신 그날의 도전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점점 지나간 시간 대신 내일을 고민한다. 게임은 한 달에서 일 년이 된다.
이 책의 진짜 즐거움은 끊임없이 나를 대입해보게 된다는 것이다. 키아라가 10분 게임을 시도할 때마다 나라면 이럴 때 어떤 도전을 했을까? 내가 안 해 보았던 일은 뭐지? 하며 내 일상을 되짚게 되고, 무의식적으로 목록을 만들고, 궁극적으로 따라하고 싶어진다.
꼭 키아라 같이 절망하지 않아도, 살면서 종종 덫에 걸린 기분을 느끼는 모든 사람들에게 10분 게임은 궁금증을 자극한다. 나도 10분 게임을 통해 과연 주인공과 같은 변화를 맛보게 될까? 아니면 전혀 다른 결론을 만들어 내게 될까?
주인공 키아라에게 10분 게임은 갑작스런 구원이 아니다. 10분 게임이 다시 가족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 다시 칼럼을 쓸 수 있게 해 주는 건 물론 아니었다. 하지만 붕괴된 것 같았던 그녀의 세계를 돌아보고, 다시 짓게 만들었다. 하루하루의 작은 새로움이 멈춘 그녀의 삶을 조금씩 움직이게 한다. 편안하지만 협소하던 그녀의 세상의 경계들이 무너지고, 켜켜이 쌓여나가는 새로운 경험 속에서 만신창이가 됐던 키아라의 자아는 비로소 단독성을 되찾는다. 인생은 특별한 반전도, 한 번의 찬란한 도박도 아님을 알아차린 사람들에게 10분 게임은 그래서 더 유혹적이다.
키아라의 이야기는 아무도 해 본 적 없지만, 누구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절망을 맞닥뜨린 주인공이 단순하지만 독창적인 방법으로 달라진 인생에 적응하고 삶을 재조명하는 이 이야기는 인생을 바꾸고 싶었던 그 누구에게라도 울림이 있을 법 하다.
책 속으로
내가 뭘 잘못했을까? 이 빌어먹을 바늘을 어디에 꽂아야 정확한 눈금에 들어갈 수 있는 걸까? 모든 게 너무 복잡해서 할 수가 없었으며, 실은 제멋대로 들쭉날쭉 했다. 바늘이 너무 두꺼운가 싶으면 눈금이 너무 작았고, 바늘이 너무 작다 싶으면, 눈금이 너무 컸다.
10분이 지나고 천의 뒷면을 보니 커다란 매듭들이 뒤죽박죽 엉켜 있었다.
분명 노파가 초등학생이라도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는데, 이런 것도 못하다니.
하지만.
하지만 세상에 우리 할머니와 닮은 노파가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것도 내가 사는 동네에. 우리 집에서 세 블록 떨어진 곳에.
우리 집이 아니라 내 집에서.
-본문 중에서
사랑은 정말 심술궂다.
사랑에 빠지면 오직 한 사람하고만 온갖 이야기를 한다.
위기를 맞으면, 온갖 사람들과 단 한 사람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본문 중에서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삶을 무한정 단순하게 만들면 그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그 안에서 길을 잃는다. 우리 뒤에 설 수 없고 항상 앞장서 있어서 우리가 속임수를 쓸 수 없는 것이 딱 하나가 있다.
그건 바로 시간이다.
행복할 때면 별거 아니다.
하지만 절망스러운 상황에 빠지면 아주 큰 것이 된다.
어쨌거나 시간은 거기 있다.
고단하나, 놀랍게 계속 이어지는 십 분 게임도 함께 한다.
십 분 게임을 할 때 대부분 하고 싶은 일을 할 기회가 생긴다.
허나 그 기회를 잡을 수 없을 때가 있다.
오히려 불행을 느낄 때도 있다.
그때는 속고 있는 것이다.
천만 다행으로 내가 나갈 때가 되었다.
안토니오 렛차가 “리타”를 부른다.
무대로 뛰어 올라가야 한다.
맨 몸으로.
뛰어오르기.
그래도 괜찮다.
-본문중에서
세상에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이 있고, 기저귀를 가는 사람이 있고, 아마추어 포르노 영화를 찍는 사람이 있고, 힙합을 가르치는 사람이 있고, 씨를 뿌리는 사람, 『해리 포터』를 읽는 사람이 있는데, 칠십 억 인구 중에 나 하나 기다리는 사람이 없을까? 십 분이면 그 사람을 만날 것이다.
-본문중에서
키아라 감베랄레 지음/ 김효정 옮김/ 문학테라피/264쪽/13,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