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순서>
1. 우리 시대의 연극 저널리즘 / '검열언어의 정치학 : 두 개의 국민'
2. 포르노 시대 한가운데에 선 나를 보다 / '그러므로 포르노 2016'
3. 그들이 ‘안티고네’를 선택한 이유 / '안티고네 2016'
4. 주장이 구호가 안 되게 서사의 깊이 보장해야 / '해야 된다'
5. 2016년 우리는 <김일성 만세>를 볼 수 있는가 / '자유가우리를의심케하리라'
6. 불신, 이래도 안 하실 겁니까? / '불신의 힘'
(계속)
2015년 10월 팝업시어터는 어느 곳이든 무대가 될 수 있다는 취지하에 대한민국 곳곳에서 팝업창처럼 돌발적으로 펼쳐지는 색다른 예술로 기획되었다. 그러던 중 어떤 단어가 특정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연극 ‘이 아이’는 공연예술센터 측으로부터 공연을 방해받았다. 대사로 언급된 ‘수학여행’ 과 ‘노스페이스’라는 단어가 세월호를 연상시킨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후 다음 공연의 두 연출자는 관계자로부터 대본 제출을 요구 받았고, 이것이 검열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내면의 목소리와 싸우게 된다. 결국 시어터카페와 마로니에공원에서 진행될 예정이던 공연은 ‘주최 측의 사정으로 공연이 취소되었습니다’라는 A4용지 한 장의 안내와 함께 중단된다. 검열이 개인의 삶에 팝업창처럼 돌발적으로 개입된 것이다.
공연을 하면 안 될 것 같은 혼란 속에 동료가 당한 검열이라는 상황을 자신이 외면한다면 범죄를 묵인하는 것과 같다는 죄책감이 순차적으로 찾아온다. 대본과 표현에 대한 자기 부정과 자책으로 연달아 자기검열과 마주한다.
결국 공연을 취소하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마음먹은 순간까지도 '혹여 앞으로 연출을 못하게 될 꼬투리가 잡힐까' 두려워하며 짧은 글로 프로젝트 연출제안에 대한 거절의 뜻을 밝힌다. 그리고 나서야 외면해 두었던 분노와 불쾌감이 마음 한쪽에서 고개를 든다. 검열을 당한 피해자가 왜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인지, 그 혼란스러운 과정을 ‘아주 지질하게’ 고백한다. 그리고 묻는다.
“불신, 이래도 안하실 겁니까?”
관객은 그 자칫 유치해 보이는 고백의 과정을 통해 검열이라는 외부의 힘이 어떻게 자기 검열로 들어서는지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검열보다 무서운 자기위안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불신해야 한다. 실체가 없는 공포가 얼마나 허망한 협박이며, 현실과 타협하지 못한 스스로의 문제가 아니라 그 포악한 잣대와 뻔뻔한 권력의 문제임을 불신의 힘으로 알아차려야 한다.
지금, 팝업시어터 사태 이후 반 년이 지났다. 이제 15분짜리 공연도 시위도 끝나고 연출자와 배우, 관객도 흩어졌다. 달라진 것은 없다. 답변 받지 못한 은폐만 남았다. 하지만 지켜볼 것이다. 불안을 찬양하는 찬송가와 주제넘게 살지 말라 흔드는 굿 한판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조혜연/ 직장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