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장비 메고 불길 뛰어들면…'소방관들 폭염속 화마와 사투(종합)

방화복 내부온도 40도 이상…화재 진화하면 탈진하기 일쑤
내달 신형 특수방화복 보급…전면 교체까지는 5년 걸려

청주의 수은주가 33.2도까지 치솟은 지난 11일 오후 3시 28분께.

청주 동부소방서 상황실에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왔다.

"의류판매장에 불이 났어요, 빨리 와 주세요!"

반쯤은 혼이 나간 듯 경황없이 신고자가 일러준 화재 장소는 청주의 최대 번화가인 성안길이었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의 왕래가 가장 잦은 상가밀집 지역, 자칫 대형 화재로 번질 수 있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순식간 비상 사이렌 소리가 동부소방서가 떠나갈 듯 요란하게 울렸다.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33명의 소방대원이 13대의 화재 진압 차량에 나눠 올라탔다. 전속력으로 출동한 대원들이 화재 현장에 도착한 것은 불과 5분여 만이었다.

차에서 내린 소방대원들은 서둘러 특수방화복과 공기호흡기 등 개인 장비를 챙겨 입고 숨 돌릴 틈도 없이 불이 난 건물로 뛰어들었다.

전기 누전으로 추정되는 화재는 건물 3층에서 시작됐다. 가연성 물질인 옷가지가 가득한 탓에 화염은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순식간에 주위로 번졌다.

건물 내부는 이미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의 연기로 가득 찼다. 후끈한 열기에 화재 현장의 필수 장비인 공기호흡기 마스크 안쪽 면에 입김이 서리면서 소방대원들은 시야 확보가 더욱 어려웠다.

설상가상으로 폭염 속 열섬 현상까지 더해진 도심 한복판의 화재 현장은 그야말로 최악에 가까웠다.

하지만 수많은 화재 현장을 누비며 노하우를 쌓은 소방대원들의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방화복 너머로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면 방향을 바꾸고, 열기가 덜하면 조금씩 전진해 나가며 불길을 잡았다.

이런 빠른 판단과 지능적인 대응으로 대원들은 5분 만에 발화 지점을 찾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1시간여에 걸친 화마(火魔)와의 힘겨운 사투 끝에 불길을 잡을 수 있었다.

진화를 끝내고 건물 밖으로 나온 소방대원들은 하나, 둘 개인 장비를 내려놓고, 길가에 풀썩 주저앉았다. 체력은 바닥나 몸을 가누기도 어려워 보였다.

특수방화복을 벗어젖힌 이들의 온몸은 마치 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헬멧을 벗으며 숨을 돌리는 대원들의 빨갛게 상기된 얼굴에서 그을음과 뒤섞인 굵은 땀방울이 쉴새 없이 흘러내렸다.

1.5ℓ 생수를 단숨에 들이켠 황선우(30) 소방사는 "여름철 화재 진화가 겨울철보다 몇 배는 더 힘들다"며 "방화복을 입고 화재 현장에 들어가 있노라면 마치 패딩점퍼를 입고 찜질방에 들어가 극기훈련을 받는 듯한 느낌"이라고 전했다.

요즘 같이 폭염이 이어지는 여름철 화재 진압에 나서는 소방대원들의 체력 소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화재 진화에 나서는 소방대원은 방호 헬멧, 방화복, 안전화, 공기호흡기, 연기투시기. 무전기 등을 착용한다. 그 무게는 자그마치 20∼25㎏에 이른다.

말 그대로 쌀 한 포대를 몸에 이고 불 속을 누비는 셈이다.

여기에 통풍이 안 되는 특수방화복은 소방대원들의 체력 고갈을 부추긴다.

특수방화복은 400도에 달하는 열기를 견딜 수 있도록 제작됐다. 하지만 외부 열기를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기 때문에 보통 진화 작업 중 내부온도가 40도 이상 오른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이렇다 보니 진화 작업 중 탈진으로 쓰러지는 소방대원이 적지 않다.

2013년 8월 경남 김해에서는 공장 화재 진압 중 탈진한 한 소방대원이 숨지는 일도 있었다.

이런 문제점을 인식, 국민안전처는 땀 흡수성을 개선한 새 특수방화복을 다음 달부터 보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기존에 공급된 방화복이 특별한 문제가 없는 이상 교체해주지 않아 전국 소방대원들이 모두 새 방화복을 사용할 수 있으려면 2∼3년 정도는 소요될 것이라는 게 소방 관계자 설명이다.

또 기존 개인당 2벌씩 지급된 전국 소방대원의 특수방화복이 완전히 교체될 때까지는 최소 5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국민안전처 관계자는 "기존에 지급된 특수방화복도 자체 규정상 정밀검사까지 끝마쳐 사용하는 데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만큼 당장 새롭게 개발된 방화복으로의 교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순차적으로 교체작업이 진행되는 것을 고려할 때 새 방화복까지의 전면교체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계절보다 몇 배나 힘든 여름철 화재 진압이지만 그 발생 횟수가 적은 것도 아니다.

충북의 경우 지난 한 해 모두 1천373건의 불이 났는데 286건(20.8%)이 여름에 발생했다.

여름철 화재는 따가운 직사광선과 불볕더위로 플라스틱과 같은 가연물의 내부 결합력이 느슨해져 불이 나면 빠르게 확산한다. 초기 대응이 늦으면 대형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팀을 이끄는 김인상(47) 소방위는 "아무리 뜨거운 불길이 치솟고 어려운 상황이더라도 우리의 대처가 늦으면 국민이 더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사명감에 고통을 감내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름철에는 냉방기 과다 사용으로 인한 화재가 많다"며 "냉방기에서 발생한 열이 주변의 먼지에 옮겨붙지 않도록 제때 청소해 화재 발생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소방대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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