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사자들, '최후의 보루' 최형우마저 떠나면…

'4번 타자의 위용' 삼성 최형우가 지난 9일 한화와 대전 원정에서 8회 추격을 알리는 2점 홈런을 날린 뒤 동료들의 격려를 받는 모습.(자료사진=삼성)
2010년대 최강으로 군림했던 사자 군단의 몰락이 충격적이다. 딱 2010년대의 전반부에만 최강팀이었던 것처럼 반환점을 돌자마자 거침없이 추락하고 있다. 지난해 '도박 스캔들' 후유증이 채 가시지 않았는데 몸이 아픈 사자들까지 드러누웠다.

삼성은 10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에서 열린 '2016 타이어뱅크 KBO 리그' 한화와 원정에서 6-10 패배를 안았다. 한화전 6연패를 안으며 대전 3연전을 2무 1패로 마무리했다.

그러면서 삼성은 창단 첫 10위 추락의 쓴맛을 봤다. 이날 삼성은 33승46패1무로 8위 한화(32승43패3무)와 SK를 잡은 9위 케이티(32승44패2무)에 각각 1경기, 0.5경기 차로 뒤졌다.

10구단 체제가 시작된 지난해 이후 첫 10위다. 또 2007년 5월5일 이후 9년여 만에 최하위로 떨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지금까지 삼성은 10경기 이상 치른 시즌에서 꼴찌로 추락한 것은 1995년과 2004년까지 3번뿐이었다.

그나마 최종 순위 최하위는 없었다. 2007년에는 4위로 포스트시즌에 나섰고, 2004년에는 한국시리즈(KS)까지 진출했다. 1995년도 5위였다. 역대 가장 낮은 순위는 8개 구단 체제 때인 1996년 6위였다. 올해 역대 최하위 시즌에 대한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한 순간의 실수가 이렇게까지…

삼성 추락의 가장 큰 원인은 지난해 10월 터진 '도박 스캔들' 파문이 꼽힌다. 삼성 마운드의 중추인 에이스 윤성환과 필승조 안지만, 마무리 임창용이 해외 도박 혐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구단이 발칵 뒤집혀졌다.

결국 삼성은 이들을 빼고 두산과 KS를 치렀지만 전력 공백을 이기지 못해 사상 첫 5연패가 무산됐다. 시즌 뒤 임창용은 방출돼 고향팀 KIA로 갔고, 윤성환과 안지만은 경찰 수사 중단 속에 가까스로 시즌 개막 뒤 합류했다.

삼성 윤성환(왼쪽)과 안지만이 지난 4월 3일 1군에 합류한 뒤 공식 사과하는 모습.(자료사진=삼성)
하지만 남은 둘도 예년만 못하다. 윤성환은 10일 한화전에서 데뷔 최다 8사사구 8실점 부진 속에 뼈아픈 5패째(8승)를 안았다. 지난해 17승7패 평균자책점(ERA) 3.76을 기록한 윤성환은 올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ERA가 4.26으로 올랐다. 리그 최고 불펜으로 꼽히는 안지만은 올해 2승4패 5세이브 4홀드 ERA 5.55로 고전하고 있다.

이런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 지난 시즌 뒤 적잖았던 전력 누수와 부상도 컸다. 삼성은 지난 시즌 뒤 거포 듀오 야마이코 나바로(지바 롯데)와 박석민(NC)이 이적하면서 타선의 무게감이 확 떨어졌다.


여기에 외국인 선수들은 모두 부상으로 신음했다. 그나마 아롬 발디리스가 복귀해 맹타를 휘두르고 있지만 2명 선발 자원은 함흥차사다. 3명 모두 그동안 활약한 수준급 외인은 아니다. 지난해 신인왕 구자욱 역시 전열에서 이탈한 공백이 크다. 삼성은 팀 타율 8위(2할8푼5리), ERA 10위(5.76)에 허덕인다.

▲박석민 보낸 삼성, 최형우 감당할 수 있을까

그나마 삼성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베테랑 사자들이다. 특히 4번 타자 최형우(33)는 '전설' 이승엽(40)과 함께 그나마 사자 군단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있다.

최형우는 10일까지 타율, 타점, 안타 등 공격 3개 부문에서 1위를 달린다. 최근 페이스가 주춤하지만 80경기 타율 3할5푼7리, 75타점, 109안타를 기록 중이다. KBO 시상 기록 중 1위를 달리는 삼성 선수는 최형우뿐이다.

이외에도 최형우는 홈런 5위(19개), 장타율 3위(6할3푼6리), 출루율 5위(4할4푼3리), 득점 7위(59개) 등 공격 전 부문에서 상위권이다. 시상 제외 기록이나 2루타(28개), 루타수(194개)도 1위다. 그야말로 전성기를 뽐내고 있다.

'한화 좋아?' 삼성 최형우(오른쪽)가 10일 한화 원정을 앞두고 훈련을 소화하다 상대팀 투수이자 옛 동료인 권혁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대전=삼성)
하지만 최형우가 내년에도 푸른 유니폼을 입고 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올 시즌 뒤 FA(자유계약선수)로 풀리기 때문이다. FA 타자 최대어로 꼽히는 최형우는 지난해 스프링캠프에서 나온 이른바 '120억 원' 발언이 허언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고 있다.

자신의 목표를 밝힌 소신이었지만 아예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다. 지난해 삼성에서 FA로 풀린 박석민(31)은 역대 최고액인 4년 최대 96억 원을 받고 NC로 옮겨갔다. 최형우는 나이가 박석민보다 2살 많지만 통산 성적이나 최근 기록은 월등하다.

최형우마저 삼성을 떠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삼성은 지난해 말 대주주가 삼성그룹에서 제일기획으로 바뀌면서 대대적인 투자가 쉽지 않게 됐다. (어쩌면 삼성 추락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박석민이나 나바로가 이적한 이유다. 최형우 역시 주가가 너무 높아지면 삼성이 잡기가 어려워진다.

지난해 대주주가 된 제일기획은 수익과 구단 운영의 효율성도 추구할 뜻을 밝혔다. 하지만 단시간에 체질을 바꾸기에는 사자 왕국은 너무 크고 풍요로웠다.

과연 위기의 사자 군단이 남은 기간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을까. 사자 군단을 이끌었던 최형우를 잡을 수 있을까. 내년에 최형우까지 떠난다면? 사자 왕국은 그 옛말이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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