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적 공동체였던 '하나의 유럽'이 사실상 와해되면서 국제 사회에서는 'EU 공백'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는 미국으로서는 정치적 동반자의 힘이 약해진 것이어서 국제 역학관계에도 연쇄적으로 크고 작은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영국의 EU 이탈은 다른 회원국들의 '독립' 심리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영국은 1973년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 이후 43년만에 EU와 결별하는 도박으로 회원국이 28개국에서 27개국으로 줄게 됐다. 영국은 EU와 '이혼'한 첫 사례지만, 영국을 뒤따르려는 움직임들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동유럽 체코와 덴마크·스웨덴·핀란드 같은 북유럽 국가들도 EU 탈퇴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EU의 중요한 축인 프랑스에서도 국민전선이라는 국우단체가 '프렉시트'(프랑스의 EU탈퇴)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 19일 이탈리아 지방선거에서 두각을 나타낸 오성운동(M5S) 진영도 유로존 탈퇴를 위한 국민투표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다급해진 유럽 정상들이 단합과 함께 EU개혁을 외친 것은 '탈퇴 도미노'를 막기 위한 것이다.
EU의 맹주 역할을 했던 독일 메르켈 총리는 "유럽연합은 오늘의 도전에 올바른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하다"며 수습에 나섰다. 이밖에 스페인, 이탈리아, 스웨덴 정상들도 일제히 EU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영국을 제외한 EU 정상들은 오는 28일 브뤼셀에 모여 브렉시트에 대한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EU에 드리워진 불확실성의 그림자는 쉽게 걷히기 어려워 보인다.
독일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도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영국에 이민문제 등에서 특혜를 주면서까지 EU에 잔류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탈퇴로 결론이 났기 때문이다.
EU가 어디로 흘러갈지는 미국으로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닐수 없다.
정치적으로 밀월관계를 유지해온 영국이 EU에서 이탈하면서 미국은 EU와의 관계를 재설정해야 한다. 지금까지와 달리 미국이 각종 글로벌 현안에 대한 유럽의 전폭적인 지지를 끌어내기 어려워질수 있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미국과 '특수관계'를 형성한 영국은 지금까지 '이슬람국가'(IS) 격퇴를 비롯한 중동문제와 아프가니스탄 사태 대처,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제재 등에 있어 미국과 '찰떡 궁합'을 보였다.
미국은 어쩌면 영국과의 끈끈한 관계를 계속 이어갈지, 영국을 뺀 나머지 유럽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할 것인지 결정해야 할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EU가 해체 수순으로 간다면 미국은 더욱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반면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대항해온 러시아나 중국의 힘이 상대적으로 부각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 화춘잉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영국 국민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했다. 중국 환구망은 "영국으로서는 유럽과 잃어버린 관계를 만회하기 위해 중국과 거리를 좁힐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중국은 자유무역협정(FTA) 등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 대통령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변인은 "브렉시트는 영국 국내 문제이자 영국·EU 관계에 국한되는 문제"라며 표정관리를 했다.
러시아의 팽창을 저지하는 역할을 해온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서 영국은 군사비를 가장 많이 부담하는 나라다. 하지만 영국의 EU 탈퇴로 유럽의 집단안보체제에 균열이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영국의 EU 이탈이 세계적으로 '신(新) 고립주의' 정서를 확산시킨다면 지구촌에는 전혀 다른 새로운 질서가 형성될 수도 있다.
미국에서 이민과 무역에 '장벽'을 쌓자고 외치는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대표적이다. 트럼프의 주장은 미국에서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트럼프와 비슷한 목소리를 내는 극우정당들이 유럽 등지에서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국제 패러다임 자체가 바뀐다면 좋든 싫든 더 큰 변화의 소용돌이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