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박 대통령은 이번에도 침묵하는가

'신공항 백지화'에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

(사진=자료사진)
"어중간한 차선책이지만 다행", "그나마 현 정부에서 가장 잘한 일"...

벌집을 쑤셔 놓은 듯 했던 영남권 신공항 논란이 '없었던 일'이 되자 21일 관련 뉴스기사에는 이같은 댓글이 붙었다. 댓글은 민심을 확인할 수 있는 바로미터(barometer)다.

신공항 입지선정 문제를 놓고 외부 용역업체 뒤에 숨어버린 현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질타하는 댓글은 셀 수 없을 정도다. 그나마 부글부글 끓었던 지역갈등이 민란(民亂)으로 폭발하지 않은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라는 댓글도 상당했다.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라고 했던가. 밀양과 가덕도로 나뉘어 요란을 떨었지만 결과는 조용히 김해로 되돌아왔다. 정부는 이 마저도 '김해공항 확장'이 아니라 '김해 신공항'이라고 강조한다.

해당지역 주민들의 허탈감과는 차원이 다른 신공항 국론분열을 야기한 데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자료사진)
첫 번째 책임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다.

박 대통령은 21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신공항과 관련한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신공항 입지 발표 1시간 전이었던 만큼 말할 계제는 아니었다고 본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과거 이명박 정부때 백지화됐던 사안을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다시 공약으로 내걸었던 장본인이다. 이어 취임 직후인 2013년 4월 국토교통부를 통해 신공항 사업 재추진 방침을 공식화했다.

따라서 신공항 백지화 발표 이후에는 이명박 정부의 전철(前轍)을 똑같이 밟은 데 대한 그리고 결과적으로 공약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한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다.

그런데 이번에도 대통령은 침묵했다. 청와대도 공식 논평을 내놓지 않았다.

해외 외부기관인 'ADPi'(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에 사전타당성 용역을 맡겨놓은 채 '비밀주의'를 고수하며 혼란과 불신을 야기해 놓고서 이제와 뒷수습의 총대는 국무총리가 지는 모양새다.

정부는 22일 오전에 황교안 국무총리 주재로 신공항 후속조치를 논의하는 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할 예정인데, 국정컨트롤 타워의 부재로 갈등조정 실패를 거듭하는 정부에 일말의 기대를 걸어야 하는 것인지 답답할 노릇이다.

기획재정부를 비롯해 7개 부처 장관이 참석하는 '미니 국무회의'에서 상처난 민심을 수습할 묘책이 나올지 두고 볼 일이다.

두 번째 책임질 사람은 정치인이다.

여야 대선주자를 비롯해 해당 지역 국회의원들까지 나서서 선거를 의식한 정치적 표계산 속에 지역감정의 불씨를 살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밀양과 가덕도가 우리 지역에서 얼마나 가까운가'라는 지리적 근접성, 대구-경북이 현 정권의 텃밭이라는 정치적 이유, 4.13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에 표를 준 부산 민심 등이 한 데 얽히면서 대구, 울산, 경상남북도가 부산을 포위하는 양상으로 변질된 것이다.

그 결과 신공항 입지선정 문제는 전문가 영역을 벗어난 정치적 이슈가 되고 말았다. 장마리 슈발리에 수석엔지니어는 실제로 이날 결과 발표에서 "신공항 후보지가 선정됐을 때 법적·정치적인 후폭풍도 고려했다"고 말했을 정도다.

마지막 세 번째로 신공항 논란에 책임이 있는 곳은 언론이다.

언론의 고질적인 '갈등 프레임'은 밀양과 가덕도를 양극(兩極)으로 몰아갔다. 저널리즘은 여러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사안에 대해 정보와 의견을 매개하고 바람직한 여론형성을 도와 민주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공익적 제도여야 한다.

그리고 언론이 추구하는 공익(public interest)의 핵심은 공동체의 유지에 있다.

이번 신공항 논란을 통해 드러난 우리 언론의 편향성은 '마이너스 저널리즘'에 한 몫을 거들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마지막으로 신공항 백지화 과정을 지켜보면서 대통령과 정치권, 언론에 깊게 뿌리내린 'TK–PK 정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언제까지 한국사회는 ‘TK–PK’를 말해야 하는 것인가.

언론인 출신의 김진현 전 과학기술처 장관은 대구-경북 출신 인사들의 정관계 독식현상을 꼬집으며 1987년 12월 23일자 칼럼에서 'TK마피아'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이후 대구-경북을 의미하는 'TK'가 정치적 유행어가 됐고, 김영삼 대통령 시절 부산-경남지역 인사들이 권력의 실세로 부상하면서 'PK'라는 신조어도 등장하게 됐다.

그러나 지난 2000년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이 개정되면서 대구(Taegu)는 Daegu, 부산(Pusan)은 Busan으로 바뀌었다. ㄱ,ㄷ,ㅂ,ㅈ이 K,T,P,CH에서 G,D,B,J로 통일되고, ㅋ,ㅌ,ㅍ,ㅊ은 k',t',p',ch'에서 k,t,p,ch로 변경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태구(Taegu)'의 TK와 '푸산(Pusan)'의 PK도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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