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에는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한다'(정교 분리)는 항목이 있다. 그렇지만 이는 우리나라 개신교회에는 정립되지 못한 원리다. 현실권력(조선, 일제, 미군정 등)에 원칙 없이 협력하여 정교 분리 원칙을 변용해왔기 때문이다.
한국 개신교 역사에서 정교 분리 원칙이 근현대사와 어떻게 작용하면서 변용됐는가를 살피기 위해 로마서 13장이 저작된 기원후 55년부터 중세 교부와 근대 이후 종교개혁자의 '국가와 종교'에 관해 먼저 살펴보았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한국 천주교 전래시점부터 현재까지의 근현대사와 개신교의 긴장, 협력, 예속, 갈등의 관계사를 통시적으로 전개한다. 이를 통해 정교 분리 엄수가 규범을 넘어 율법이 됐던 교회 구조 속에서, 기독교, 특히 개신교가 현실 정치권력과 어떤 조우를 했는지 살피고, 건강한 공존을 기하기 위해 어떠한 미래적 전범을 설정해야 하는지 그 방안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에도 개신교는 개입하고 있었다. 3·1운동에 참여하였으나 이후 주 세력이 투옥되면서 지도력 공백 현상이 심화되기도 하였다. 신사참배 허용에 대한 책임소재를 놓고 극도의 분열 상태를 노출했다.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또 다른 외세에 의해 한국 개신교 차원의 일제 강점기 비신앙·반민족적 행보에 대한 반성과, 국가와 교회의 바른 관계를 정립하기 위한 성찰의 기회가 모두 사라지기도 했다.
광복 이후 미국의 '남한 내 친미 반공 개신교 국가 건립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정치와 개신교는 더욱 유착됐다. 그동안의 교회 내부의 갈등과 분열을 무마시킬 해소의 기제로서 친미 반공주의는 개신교에 결합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집권 이후 국가 의전, 정책, 인사 등에 친개신교적인 성향이 드러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허나 이 사실은 현 시기의 정치의식과 사회 규범의 잣대로 재단될 수는 없다. 약소국이었단 당시의 현실적 한계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화 열풍이 거세질 때, 개신교는 그동안은 이승만 대통령을 도왔다 할지라도 4·19를 계기로 통렬한 역사적 참회와 바른 정치의식 각성을 선도적으로 수행했어야 했다. 그렇지만 권력으로부터의 홀로서기를 두려워했다. 이는 전교될 때부터의 극심한 박해와 일제의 신사참배 압박, 이북 해방공간에서의 축출 등이 빚어낸 트라우마의 결과로 해석된다. 한국의 1세대 개신교 지도자는 반공주의와 국가, 개신교를 일체화했듯, 교회와 자신과 하느님을 한 몸체로 여겼다. 따라서 근간이 보장되지 못해 교회가 무너진다면 자신은 물론, 하느님에게 배역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이같은 인식이 이후 정통성이 결여된 정부 출현기에도 교회가 정권에 협력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작용했다. 견고하지 못한 교회의 기틀이 배태한 염려와 공포가 국가와의 의연하고 건강한 관계 설정에 장애가 된 것이다. 산업화 시기에도 이 관계는 유지되어, 보수정치 세력과 맥을 같이 했다.
현대로 들어서서 억압과 굴종의 관계로서의 정부와 종교의 갈등 구조는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그렇지만 '정치'와 '종교'에 대한 일반인들의 혐오는 그치지 않는다. 앞선 흐름의 결과물인 '지금'이 탐탁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말미에 '공동체'의 의미를 끌어온다. 보수-진보간 교회에서 상호 영역을 간섭하지 않되, 양자 간 협의를 통해 한반도 선교의 방향을 일관되고 균형 있게 정립해나가자는 것이다.
이기주의, 울타리와 외벽을 허물고 사회 전체를 교회당화하는 열린 신앙이 절실하다. 이것이 실추된 한국 교회에 대한 신뢰를 회복케 하고, 답보된 기독교적 사회 정의를 편만하게 만들 동력이 될 것이다. 그러한 공공신학적 노력이 펼쳐지는 현장에 하느님 나라가 현시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서두에서 언급한 '공동체'다.
김용민 지음/소명출판/293쪽/1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