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개헌론에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대통령 눈에는 선거밖에 안 보이느냐"며 격한 비판을 쏟아냈다.
대선이 1년밖에 안 남은 시점에서의 개헌 논의는 정략적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권 내 대표적인 개헌론자로 알려져있다.
정계 입문한 이래 박 대통령은 4년 중임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꾸준하게 주장해 왔다.
2000년 11월 한나라당 부총재 당시 "5년 단임제는 레임덕의 문제가 있을 수 있으며 (집권자가) 일을 하는 데 시간적인 부족함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고, 그 다음달엔 "4년 중임제로 고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볼 때가 됐다"고 밝혔다.
이 무렵 이회창 총재 등 당내 주류 측이 개헌론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아 갈등을 빚기도 했다.
야당 대표 시절엔 개헌론에 더욱 힘을 실었다.
2004년 한나라당 당권을 쥐자마자 당론을 수정해 4년 중임제 개헌을 총선 공약으로 내거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으며, 이듬해까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막상 다른 쪽에서 본격 제의가 될 때면 몸을 움츠리는 경향도 보였다.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개헌 제안에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응수한 데 이어 2009년 '개헌을 서두르자'는 정몽준 전 대표의 제의에 "국민적 공감이 필요하다"고 한 발을 뺀 것이다.
이후 잠잠했던 개헌 논의는 이명박 정부 말에 다시 수면 위에 올랐는데, 2012년 11월 새누리당 대선 후보였던 박 대통령은 "집권 후 4년 중임제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취임 후 두달째에 야당 의원들과 만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는 "민생이 어렵고 남북관계도 불안한 상황에서 개헌 논의를 하면 블랙홀이 될 가능성이 있다"며 개헌 논의를 일축했다.
그 입장은 줄곧 이어져서 올해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나라가 한치 앞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으로 몰아가면서 개헌을 해보겠다고 하는 건 입이 떨어지지 않는 얘기"라고 밝힌 데 이어, 4월 언론사 편집국장 간담회에서도 "지금 이 상태에서 개헌을 하게 되면 경제는 어떻게 살리냐"고 말했다.
정 의장의 제안 이후 범야권을 중심으로는 개헌 논의가 확산되고 있지만 현직 대통령의 양해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이번 정부에서도 개헌이 이뤄지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럼에도 심각한 레임덕 국면이라면 위기 탈출의 한 방법으로 대통령 스스로 '블랙홀'을 만들 가능성 역시 적지는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