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에서만 유독 자동차 업체들이 이렇게 뻣뻣하게 나오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임의설정'이 등장한 배경과 경과를 살펴봐야 한다.
◇ '임의설정 금지' 조항만 만들고...제재는 솜방망이
대기환경보전법에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 즉 임의설정을 금지하는 조항이 들어간 것은 지난 2012년부터다. 사건의 발단은 현대기아차의 대규모 임의설정 적발 건이었다.
지난 2011년, 현대.기아차의 디젤 SUV 차량 12개 차종, 87만대에서 인증시험 때와 달리, 에어컨 가동 등 특정 조건에서 배출가스인 질소산화물이 과다배출 되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러나 당시는 이를 금지하거나 처벌하는 조항이 없어, 현대.기아차에는 리콜 의무가 없었다. 환경부는 현대기아차에게 권고하는 형식으로 자발적 리콜을 실시하는 수밖에 없었고, 이후 법 개정을 통해 임의설정 금지 조항을 신설하게 된다.
환경부의 한 간부는 “당시 임의설정 금지 조항을 만들지 않았으면, 지금 폭스바겐 사태는 아마 손 놓고 구경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당시 배출가스 문제보다는 자동차 산업 보호 논리가 더 강하게 먹혔다는 점이다. 임의설정 금지조항은 신설됐지만, 이를 어겼을 경우 부과되는 과징금은 상한선이 차종당 10억원에 불과했다.
실제로 2012년 8월 현대 투싼 2.0 디젤과 기아 스포티지 2.0 디젤에서 임의설정이 적발됐지만 과징금은 2억6천만원에 불과했다. 적발된 차량 몇 대만 팔아도 낼 수 있는 그야말로 솜방망이 과징금이었다.
환경부가 몇 번이나 과징금 수준을 상향하려고 시도했지만, 번번이 재계나 산업부 등의 반발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때문에 지난해 폭스바겐의 디젤게이트가 터졌을 때도, 우리 정부가 부과할 수 있었던 과징금은 15개 차종에 대해 141억원에 불과했다.
지난해 부랴부랴 대기환경보전법 개정에 나서, 임의설정에 대한 과징금 상한이 차종당 100억원으로 강화되고,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처벌조항도 생겼다. 그러나 폭스바겐은 적용 제외다. 법이 내년부터 시행돼 폭스바겐에 소급적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폭스바겐, 한국에선 버티기가 가장 합리적 선택일 것"
그런가하면 임의설정이 적발돼 리콜 명령이 내려졌는데도 버티기로 일관할 때, 이를 제재하는 방안은 개정법에도 들어있지 않다. 마찬가지로, 리콜 지연으로 발생하는 대기오염 행위에 대한 대처 방안, 소비자 피해를 보상하는 방안도 없다.
때문에 최근 폭스바겐이 부실한 리콜 계획서를 제출해 3번이나 퇴짜를 맞아, 결함시정이 계속 미뤄지는데도 뾰족한 대책을 못 내놓고 있다. 환경부는 다시 리콜 계획서를 만들어오라고 폭스바겐 측을 압박할 뿐이다.
그러는 동안 배출가스를 과다 배출하는 폭스바겐 차량 12만5천여대는 여전히 도로를 질주하고 있다.
리콜이 지연되자 참다못한 차주들이 안 되면 환불이라도 해달라고 환경부에 청원서를 넣었지만, 환경부는 환불 규정은 없다며 고개만 젓고 있다. 대기환경보전법상 자동차 교체 명령을 적극적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지만, 요지부동이다.
남준희 녹색당 정책위원은 “환경부 장관이 정무적으로 판단해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도 있을텐데, 한번도 그렇게 해본 적이 없으니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남 위원은 “폭스바겐이 한국에서 유독 뻣뻣하게 나오는 것이 이해가 안될 수도 있지만, 자동차 업계에 유리하게 짜여진 현행 법제도를 감안하면 폭스바겐으로서는 철저히 합리적인 행동”이라며 “전문적인 법적 자문을 받고 하는 행태”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