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면옥에 가서 냉면과 편육,만두를 먹었다. 다시 딸에게 물었다. "필동면옥이 맛있어? 아님 평양면옥이 맛있어?"
"둘 다"라는 예상 밖의 답이 돌아왔다. 내딸이구나. 점점 나이가 들면서 식성이 아버지를 닮아간다. '피를 속일 수 없다'는 게 모친의 분석이시다.
어렸을 때부터 평북 신의주가 고향인 아버지를 따라 서울의 내로라하는 냉면집을 문지방 닳도록 다녔다. 외식할 때면 언제나 그렇듯이 1순위가 냉면이었다.
집에서는 '분말스프'가 들어있는 '청수냉면'을 질리도록 먹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한때는 냉면 먹자는 말이 너무나도 싫었던 적이 있었다.
육군병장 만기 제대전까지만 해도 '대체 냉면을 무슨 맛으로 먹느냐'고 투덜대는 사람중에 내가 속했었다.
바야흐로 2010년에 접어들면서 우리 사회에서는 '냉면의 재발견'이 시작된다. 요즘만큼 '핫'하진 않았지만 그 당시 출입처에서 만난 젊은 여경이 대뜸 '평뽕 한사발 하자'고 할 정도였다.
냉면이 처음엔 그저 그렇지만, 한동안 안먹으면 너무 먹고 싶어진다고 해서 '뽕'자가 붙었다. 마약처럼 강한 중독성이 있다는 뜻이다.
가격도 만만치 않다. 한그릇에 만원은 기본이고 그보다 더한 곳도 많다. 8,500원을 받으면 '착한 가격'이라고 할 정도다.
하지만 많은 젊은이들이 냉면에 시원하게 지갑을 연다. 나를 위한 작은 사치 즉 '스몰 럭셔리(small luxury)'가 냉면에 통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정의대로라면 냉면은 '평양 냉면'을 칭한다고 봐야한다. 지금까지 이 글에 나온 냉면은 '평양냉면'으로 해석해야한다.
그런데 어디 냉면이 평양식만 있는가. 오장동에 모여있는 함흥냉면집에서 내는 냉면은 냉면이 아니란 말인가. 부산의 밀면은 또 무엇이며 육전을 얹어먹는 진주 냉면은 또 뭐란 말인가. 시원한 막국수와 김치말이국수는 대체 어디에 넣어야하는가.
이에따라 새로운 분류법을 만들어야한다. 평양지역에서는 요즘 우리가 먹는 평양냉면을 그냥 '국수'라고 불렀다는 것에서 착안했다.
이세상에 국수는 단 하나다. 다만 지역별로 면과 육수, 고명에 조금씩 변형이 있었을 뿐이다.
이 분류법에 따르면 평양 국수, 함흥 국수, 부산 국수, 진주 국수 등으로 칭할 수 있게 된다. 실제 최근 서울 강남에 문을 연 '봉밀가'는 냉면이라는 말 대신 '평양메밀물국수'라는 메뉴명을 쓴다.
남한에서 평양식 국수를 잘한다는 곳의 상호명을 자세히 살펴보면 평양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능라도, 을밀대, 대동관은 각각 평양 대동강에 있는 섬, 누각, 문(門)이다.
大味必淡(좋은 맛은 담백하다), 슴슴하다, 시원한 육수가 목젓을 타고 지나갈 때의 짜릿함, 밍밍하다는 모두 평양식 국수를 표현할 때 나온다.
서울에는 평양식 국수의 강호들이 꽤 많고 주로 시내 구 도심에 몰려있어 오장동, 필동, 장충동 등이 평양식 국수의 성지로 꼽힌다.
최근에는 정인면옥 등 지역에서 성공한 국숫집들이 서울에 분점을 내는 경우도 빈번하고, 옥류관 출신 주방장이 직접 차린 '동무밥상' 같은 다크호스들이 등장하고 있다.
지극히 주관적인 '냉면의 모든 것'②에서는 먼저 평양식 국수의 기원과 이모저모를 살펴보고자 한다. 평소 평양식 국수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었다면 이메일(steelchoi@naver.com)을 보내주시면 가급적 충실한 답을 내놓도록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