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4년, 윤관은 고려 국경을 침입한 여진의 군대에 뼈아픈 패배를 당한다. 그는 결국 자세를 낮추어 여진과 강화를 맺고 돌아온다. 이후 윤관은 패배의 원인을 깨닫고 당시 고려 국왕 숙종에게 건의한다.
"제가 패한 까닭은 적은 기병인데 우리는 보병이라 대적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 고려사 열전 윤관
윤관은 강력한 기동력을 가진 여진의 기병에 대응하기 위해 별무반(別武班) 창설을 건의한다. 그렇게 그는 기병으로 구성된 신기군과 보병부대인 신보군 외에 다양한 특수부대를 편성한다. 현직 문·무 관리를 제외하고 말을 가진 모든 남성과 과거 준비를 하지 않는 20세 이상 남성도 모두 동원한다.
3년 뒤, 여진을 깨부수기 위해 철저히 준비한 윤관은 17만 대군을 이끌고 대대적인 여진 정벌에 나선다.
윤관과 17만 고려군은 1107년 여진을 정벌하기 위해 북쪽 국경으로 진격한다. 그런데 윤관은 공격에 나서기는커녕 예전에 사로잡아둔 여진 인질을 석방하겠다며 여진의 추장들을 불러들인다. 윤관은 그렇게 한곳에 모인 400여 명의 여진 추장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한다. 절치부심 끝에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여진 정벌에 나선 윤관은 돌연 왜 이런 행동을 한 것일까.
그런데 윤관의 후한 대접에 경계를 풀고 술에 취한 여진의 추장들은 복병을 동원한 윤관의 기습 공격에 모조리 죽임을 당한다. 이후 윤관의 고려군은 차례대로 여진의 성을 함락시키고, 고려는 새롭게 확보한 여진의 영토에 아홉 개의 성, 즉 '동북 9성'을 축조한다. 3년간 준비한 여진 정벌이 빛을 본 순간이었다.
결국 고려는 여진에게 "자손 대대로 고려에 조공을 바칠 것"이라는 맹세와 "기와 조각 하나도 고려에 던지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동북 9성의 반환을 결정한다.
"윤관이 명분 없는 전쟁을 일으켜 패전하고 나라에 피해를 입혔으니 그 죄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 고려사 열전 윤관
이후 윤관은 동북 9성 반환 논의와 함께 탄핵 당한다. 고려의 여진 정벌과 동북 9성 개척의 역사가 막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고려는 이를 계기로, 후에 점점 더 세력을 키워 금나라를 건국하는 여진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조선 시대 세종의 6진 개척도 동북 9성이란 고려의 역사를 토대로 시행될 수 있었다.
지금의 한반도 영토를 확립하는 데 선구적 역할을 한 고려의 여진 정벌과 동북 9성 그리고 윤관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역사저널 그날을 통해 소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