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고절 백전노장의 애달픈 호소도 후끈 달아오른 정치 현장의 반복과 적대를 식히기엔 힘에 부쳤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추도식이 열린 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4.13 총선에서 제1당이 된 더불어민주당, 그와 더불어 3당 체제를 이룬 국민의당 지도부가 속속 집결했다.
국민의당은 1년 전 추도식에서 ‘물병세례’ 등의 봉변을 당한 터라 더욱 긴장된 모습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안철수 대표가 버스에서 내려 입장하는 순간부터 사달이 났다.
일부 추모객들은 “전라도에 가라, XX들아”라거나 “대권에 눈먼 안철수 XXX 물러가라” 같은 험악한 욕설을 퍼부었다. ‘배신자’ ‘양아치’ ‘이명박 앞잡이’ 등의 표현도 거침없이 터져 나왔다.
추도식이 시작되며 잦아들었던 분위기는 국민의당 지도부가 퇴장하면서 다시 격앙됐다.
거친 욕설과 야유가 또 빗발치자 경호원들은 우산을 5~6개 동시에 펴들고 근접경호하며 혹시 날아들지 모를 물병과 계란세례에 대비했다.
안 대표 등은 옛 동지나 지지자였을지 모를 추모객들로부터 쫓기듯 버스에 몸을 실었다.
물론 문재인 전 대표를 포함한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은 전혀 다른 대우를 받았다.
이 가운데는 봉하마을의 터줏대감 격인 김경수 당선자도 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으로서 이날 “정치적인 언행에 대해 불만이 있는 분이 오더라도 최대한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줄 것을 당부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지도 7년이 지나는 시점에 동서화합을 강조했던 고인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적어도 야권 내에서는 화합과 통합의 새 기운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는 시대정신에서다.
하지만 그렇기는커녕 이날 노 전 대통령 추도식은 두 야당 간의 뿌리 깊은 불신과 반목을 드러냈다.
더민주 인사들은 주로 추모객들에 감사 표시를 하며 소통했고 국민의당 관계자들과는 대화조차 삼갔다.
오후 2시 추도식이 시작됐지만 행사장 맨 앞줄 오른편에 나란히 앉은 더민주 김종인 대표와 국민의당 안 대표는 거의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뒷줄에 앉은 우상호, 박지원 원내대표 역시 서로를 외면했다. 문 전 대표와 문희상, 정세균 의원 등은 국민의당 지도부와 아예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노 전 대통령 묘역 참배가 끝난 오후 3시10분쯤에는 더민주와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당 지도부가 권양숙 여사를 예방하기 위해 사저에 모였다.
이 자리에서 국민의당 안 대표가 더민주 김종인 대표에게 “저희는 5시 비행기인데 대표님은 몇 시에 올라가냐”고 물은 게 거의 유일한 대화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봉하마을 입구에는 ‘안철수 대표의 봉하 방문을 열렬히 환영합니다-친노일동’이란 문구가 써 있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