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해운 부실에 물린 농협은행…현 지도체제 '흔들'(종합)

농협내 사조직 천년회·금초회 책임설도 '솔솔'

최근 조선·해운 업종에 불어닥친 구조조정 여파가 NH농협은행 이경섭 행장의 거취 문제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현재 농협은행은 1분기 894억 원의 순익을 내는 데 그치며 실적 쇼크를 낸 데 이어 오는 2분기에는 당기순손실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 조선사에 대한 기업여신 등에 대한 책임문제, 김병원 회장 체제로의 전환 등이 맞물려 이 행장의 사내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는 말들이 흘러 나온다.

◇ 농협은행이 빠진 'RG'란 늪

20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농협금융은 올해 1분기 연결기준 당기순이익 894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조선·해운 업종 부실기업에 대한 과도한 충당금(3575억 원, 전년 대비 57% 급증)에 따른 것이다.

농협은행의 올해 1분기 당기순이익은 322억 원, 창명해운(1944억 원)과 STX(413억 원), 현대상선(247억 원) 등 조선·해운업에 대한 충당금 적립에 따른 신용손실충당금전입액 3328억 원(전년동기대비 61.9% 급증)을 기록했다.

특히, 현재 농협은행은 STX조선해양에 대한 선수금환급보증(RG) 4000억 원, 성동조선 1700억 원 등 조선업체에 대한 RG는 2조 원에 달한다.

RG란 선주가 조선사에 미리 지급한 배값에 대해 은행이 지급보증을 서는 것을 말한다. 조선사는 RG 보증료로 은행에 보통 계약금의 0.3~0.4% 정도를 내고 조선사 계약 기간에 맞춰 선주에게 배를 인도하면 은행은 보증의무가 사라지고 보증료는 수익이 된다.

◇ RG 여신 중심에 금초회가 있다?


업계에서는 농협은행의 대기업 여신 행보가 남달랐다는 평가다.

일반적으로 RG는 2006년 이후부터 금융위기 이전까지 조선업이 호황을 맞았을 때 꽤 주목을 받던 은행들의 수익원이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조선업 불황이 장기화 조짐이 짙어지자 시중 은행들은 조선업종 관련 여신을 줄여나갔다.

하지만, 농협의 경우 반대였다는 것이다. 오히려 농협은행은 농협중앙회에서 분리되기 전인 2010년부터 기업여신을 늘리기 시작했다. 조선사들과의 RG 계약에 적극적이었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와관련해 22일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시중은행들이 조선업계와 관련된 여신을 줄여나갈 때 농협은행의 경우는 오히려 여신에 더 적극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현 농협은행의 경영진이 자리잡고 있고 농협중앙회의 정권교체와 맞물려 벌써부터 농협내부에서는 경영책임론이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원병 체제에서 장기간 농협경영의 책임자였던 이경섭 은행장에게로 시선이 쏠리고 있다는 얘기다. 경영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어서다.

이와관련해 농협 안팎에서는 최원병 전 회장과 이경섭 행장의 연결고리인 농협내 사조직 '천년회와 금초회'란 이름이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다.

이경섭 행장은 대구 달성 출신으로 천년회 멤버로 분류되는데, 금융기획실 초기 멤버(금초회)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천년회는 농협중앙회 내에 최원병 전임 회장 측의 사조직 성격의 모임으로, TK(대구·경북) 출신 중 경주 출신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최원병 회장은 경북 경주 출신으로 지난 2007년 말 임기 4년의 농협중앙회장으로 선출됐고, 2011년 연임에 성공해 올해 3월까지 총 8년간 회장직을 맡았다.

◇ 김용환 농협금융 회장의 발언 '빅배스' 주목

지난 3일 열린 금융지주 회장 취임 1년 기자간담회에서의 김용환 회장의 "충당금 부담을 빅배스로 정리해야 한다"는 발언도 주목받고 있다.

빅배스(big bath)란 '목욕을 해서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한다'는 뜻이다. 기업의 CEO 교체기에 전임자의 부실을 떨어내는 경영전략을 이르는 말이다. 잠재 손실과 일회성 비용 등을 회계장부에 반영해 새로운 행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전임 행정부의 부실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은행권에서는 통상 빅배스란 말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며 "빅배스란 용어까지 썼다는 것은 사안이 그만큼 엄중하고 심각하다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 향후 실적 악화 가능성 기정사실化

업계에서는 올해 농협은행이 사상 최악의 사태를 맞고 있다는 보고 있다. 시중은행보다 상대적으로 느슨한 리스크 관리로 제때 대기업 여신 포트폴리오를 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게다가 이를 정상화하기 위해 빅배스를 한다고 했으니 실적 악화는 불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빅배스를 하게 되면 실적은 곤두박질친다.

김용환 회장도 이날 간담회에서 "농협금융은 다른 금융지주보다 대기업 여신이 많아 조선·해운·철강 등 5대 취약에 가장 노출돼 있다"면서 "1·4분기 실적이 좋지 않은데 이어 2·4, 3·4분기의 실적도 장담하지 못한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STX조선해양의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시기가 예상보다 앞당겨질 수 있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어 농협은행의 향후 실적은 암울하기만 하다.

한편, 이를 놓고 새 회장 취임에 따른 대규모 조직·인적쇄신을 염두에 두고 현 지도체제에 타격을 주려는 정치적 의도가 깔린 공세 아니냐는 반론도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농협 중앙회 회장이 8년만에 바뀌었다"며 "농협이란 조직의 특수성을 이해한다면 이경섭 행장을 향한 책임여론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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