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이 만난 신해철· 손열음· 이자람 등 7인

신간 '진중권이 사랑한 호모 무지쿠스'

신간 '진중권이 사랑한 호모 무지쿠스'는 창비 팟캐스트 '진중권의 문화다방'을 찾은 신해철, 윤종신, 신대철, 이자람, 손열음, 장일범, 고건혁 등 7인의 '호모 무지쿠스(homo musicus)'와 진중권의 대화를 담았다.

대중가요 가수, 작곡가, 록커, 판소리 창작자, 클래식 연주자, 클래식 평론가, 인디음악 제작자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음악관이나 창작관을 설명하기도 하고, 한국 음악시장에 대한 의견을 밝히며 음악에 대한 열정과 고민을 진솔하게 말한다.

신해철의 인터뷰는 생전의 마지막 육성 기록이다. 2014년 8월 25일, 신해철이 세상을 떠나기 불과 두달 전에 이루어진 이 인터뷰에서 그는 그간의 활동을 되돌아보고 솔로 6집 발매 소식과 더불어 앞으로의 활동 계획까지 밝힌 바 있다.

저자는 이 인터뷰를 정리하며 자신만이 알고 있던 신해철과의 일화를 풀어놓는다. 2009년 '북한의 로켓 발사를 민족의 일원으로서 경축한다'는 글을 올렸다가 보수단체에 국보법 위반으로 고소당한 신해철이 진중권에게 전화를 걸어왔을 때 검찰에 가서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하겠다는 그를 말리느라 진땀을 빼야 했던 기억이다.

저자는 "별것 아닌 일화지만,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금 나만이 아는 이 사소한 사실 한조각을 보태어 이 대책없이 자유로운 영혼에 대한 세상의 기억을 조금이나마 더 늘리고 싶다"며 그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다.

신해철은 사회를 향한 거침없는 쓴소리로 '독설가'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지만 근년에는 아이를 키우고 가족을 돌보며 완숙하고 너그러운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악화된 음악시장에서 고군분투하는 후배 뮤지션들에게 선배로서 '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라고 겁을 주기보다는 용기를 주어야 한다고, "우리 사회에서 정말 부족한 건 무엇이 정의냐 무엇이 옳으냐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너는 잘못되지 않았다고 편들어주는 사람, 질책하는 사람이 아니라 보듬어주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엿볼 수 있는 '마왕'의 변화다. 이외에도 대학가요제 데뷔부터 넥스트 활동과 솔로 활동까지 자신의 음악적 여정을 되돌아보고 '고스트 스테이션'등 그의 음악 외 활동에 대해서까지 나눈 진솔한 대담에서는 신해철만의 올곧은 인생관과 음악관을 엿볼 수 있다.

윤종신과의 인터뷰에서는 015B의 객원보컬로 데뷔한 20대 초반의 청년 윤종신부터 발라드의 제왕, 시트콤부터 예능까지 종횡무진하는 방송인, 그리고 연예기획사 미스틱89의 대표가 되어 제작자이자 기획자의 길을 걷기까지 윤종신의 인생의 변곡점들을 살펴본다.

'한국 록의 전설' 신대철은 한국의 음원시장을 바로잡기 위해 설립한 '바른음악협동조합'의 이사장으로서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아버지 신중현의 음악적 유산, 시나위를 거쳐간 임재범, 서태지와의 이야기도 솔직하게 풀어놓는다.

'냉정과 열정의 피아니스트' 손열음과의 인터뷰, 그리고 국내에 '해설이 있는 음악회'를 최초로 도입한 클래식 평론가 장일범과의 인터뷰에서는 클래식 음악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을 곁들여 클래식이 낯선 독자라도 손쉽게 둘의 대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진중권은 한국의 척박한 음악평론을 꼬집으며 평론가는 "창작자나 연주자와 더불어 한국의 클래식 음악계라는 의자를 떠받치는 제3의 다리라 할 수 있다"며 "근대 이후 융성한 예술문화의 바탕에는 언제나 활발한 비평활동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꼬집는다.


'사천가', '억척가' 등 서양의 문학을 판소리로 완벽하게 재탄생시키고, 인디밴드 활동으로도 이름을 날리고 있는 소리꾼 이자람은 그만의 범상치 않은 창작관을 거침없이 펼친다.

인디음반제작사 '붕가붕가레코드'를 설립해 2000년대 이후 한국의 인디음악 씬을 주도해온 '곰사장' 고건혁과의 인터뷰에서는 젊은 음악인들이 새로운 음악시장에서 어떻게 활로를 찾고 있는지, 또 대형 연예기획사의 시대에 소규모 기획사로서의 생존전략을 털어놓는다. 이와 같이 '호모 무지쿠스'가 창작, 연주, 기획, 제작, 해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음악계를 헤쳐나가는 전략들을 엿볼 수 있다.

인터뷰이들 간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통해 그들이 한국 음악계를 어느 방향으로 이끌어갈지 짐작해보는 일도 이 책을 읽는 즐거움 중의 하나다. 음악시장이 황금기를 누렸던 1990년대에 활동한 윤종신, 신해철, 신대철 등의 기성세대와, 붕가붕가레코드의 고건혁, 판소리·인디밴드·뮤지컬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자람 등 신세대의 음악시장에 대한 각자의 시각을 절로 비교하게 된다.

진중권은 이들에게 변화한 음악산업, 대표적으로 스트리밍 시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공통적으로 던진다.

윤종신은 음악이 배경음악, 엔터테인먼트가 되고 있는 것에 안타까움을 표시하면서도 "디지털 싱글 시장이 있는데 왜 지금 떠오른 생각을 굳이 내년에 가서 그때의 내 생각인 것처럼 발표해야 하느냐"며 '월간 윤종신' 프로젝트 등으로 스트리밍 시장에서 자신의 창작방식에 맞는 판매 활로를 찾는다.

'바른음악협동조합'의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신대철은 "음악은 산업이기 이전에 하나의 예술"이라며 "음악이 예술작품으로서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는 게 안타깝다"는 고전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신해철은 "카세트테이프의 스위치를 한번이라도 눌렀던 세대는 절대로 아이팟의 조그셔틀을 100퍼센트 사용할 수 없다"면서도 '극심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사람이 있고 사람은 음악을 듣는다는 단순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며 후배 뮤지션들에게 힘을 실어주려 한다.

반면 장기하와얼굴들, 브로콜리너마저 등의 음반을 제작하며 2000년대 인디음악 씬의 중심을 잡은 붕가붕가레코드의 고건혁은 본인이 음반 제작자임에도 불구하고 CD를 구매한 지 오래되었다며 "스트리밍 시장은 오히려 기회"라고 말한다. 다른 산업과 다를 바 없이 음악시장도 콘텐츠 소비 방식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클래식 음악계 역시 이 흐름을 피해갈 수는 없다.

클래식 평론가 장일범은 고급음악도 음원으로의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오히려 디지털 콘서트홀 같은 스트리밍 방식을 통해 지리적 장벽을 허물어 청취층을 늘리고 있다는 점을 짚는다.

저자는 "이 책에 소개한 일곱명의 아티스트들은 한국 음악계의 지형 속에서 각자 다른 문제와 씨름하며 현재의 교착상태를 돌파하려 애쓰는 이들"이라 정리한다.

진중권 지음/창비/356쪽/16.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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