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전 고문은 "1993년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민자당 의원으로 처음 광주묘역을 참배했는데 당시만 해도 '민자당 의원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왔느냐'는 질타가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후 매년 5월이면 거의 빠짐없이 광주를 찾았고, 2006년 5월엔 경기도지사 자격으로 광주를 방문한 그를 지역 시민단체 대표들이 따뜻이 환대했다.
광주 시민들이 한나라당 지도부와 자리를 함께 한 건 그때가 처음이다.
손학규 전 고문이 2007년 한나라당을 탈당한 뒤 40여일만에 비(非)한나라당 대선주자 행보를 개시하며 먼저 찾은 곳도 광주였다.
그해 5월 1일 광주 묘역을 참배한 그는 "이념과 지역, 남북이 융합하고 조화를 이루는 삼융(三融)의 시대와 융화동진(融和同進)을 위해 5·18정신을 이어받은 광주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작 '5·18의 광주'와는 직접적인 인연이 없다.
1980년 초 영국 유학을 떠나면서 광주민주화운동이나 87년 6월 항쟁 등은 모두 제3자적 시각에서 관찰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점이 오히려 그를 광주에 매어 놓게 했는데, 2010년 8월 망월동 묘역을 참배하면서는 "이곳에 오면 민주화 운동을 같이 했던 동지들과 제 어머니가 생각난다"고 말하고, "지난 정치 역정 때문에 광주를 찾을 때면 마음 한편에 송구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런 그도 5·18 설화에 휘말린 적이 있다.
2007년 8월 광주·전남경영자총협회 초청 특강자리에서 "새롭게 태동하는 통합신당이 말로는 미래 세력이라면서 아직도 '80년 광주'에 갇혀 우리 스스로를 묶어두고 있는 게 아니냐, 더 이상 5·18 광주정신에 갇혀 있어선 안된다"고 발언 한 게 문제가 됐다.
당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손학규 전 지사의 광주발언은 광주정신과 민주개혁세력을 모독한 것"이라고 맹비난했고 천정배 의원은 "'광주를 털어버려야 한다'는 발언에 경악한다, 본심이 드러난 것이 아닌가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손 전 지사는 "광주정신이 80년대에 머무르지 말고 광주를 넘어 대한한국, 21세기 세계로 미래로 힘차게 뻗어 나가야 한다는 뜻이었다"고 해명했다.
이후 2014년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강진에 칩거해온 그가, 18일 정계복귀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36주기에 맞춰 망월동 묘역을 참배하면서다.
그는 "국민이 새 판을 시작하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있고, 광주의 5월은 그 시작"이라면서 "총선 결과를 깊이 새겨 국민들의 분노와 좌절을 제대로 안아서 새 판을 짜는 데 앞장서 나갈 것을 다짐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자리를 함께 한 지지자들은 "손학규 대통령"을 연호하기도 했다.
5·18에 각별한 정치인 손학규가 2016년 5월 18일에 꺼내놓은 발언에도 큰 무게가 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