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도레이 갑질에 '신용불량자'된 한 중소기업 대표의 사연

"물량 줄게" 약속에 설비까지 마쳤지만 4년간 全無…도레이 "20억 투자, 피해자는 우리"

도레이케미칼코리아의 선급금 20억과 A사 윤모 대표의 40억을 투자해 만든 경북 구미 섬유공장의 생산라인은 4년째 멈춰있다. (사진=김연지 기자)
화학소재 전문 생산업체인 도레이케미칼코리아(이하 도레이)가 물건을 납품하던 한 중소기업과의 거래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계약이 끝나도 해당 아이템을 생산하지 못하게 하는 등 '갑질'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되고 있다.

◇ "임가공 주겠다" 약속 믿고 수십억 들여 설비 투자했는데…2년 만에 기업회생 신청

A사는 도레이(옛 웅진케미칼)를 비롯, 타기업의 섬유 원료를 구매, 각종 침구류, 원단류 등 완제품을 제조·수출해왔다. 10여년 만에 연 매출 300억 원 대를 돌파하고 수출입 국가도 미국, 유럽, 중국, 중동 등 세계 각지로 뻗어나갔다.

A사와 도레이와의 인연은 2010년부터 시작됐다. 인연이 악연으로 이어진 건 이로부터 2년뒤. 경북 구미에 있는 섬유 공장에 생산 라인을 추가, 제조업을 강화해보려던 윤 모(55) 대표와 도레이와 새로운 계약을 맺으면서부터다.

윤 대표에 따르면 당시 도레이로부터 "추가 생산 설비 마련에 부족한 20억원 선급금을 주고, 원자재도 줄테니 설비를 완공해 임가공품을 납품해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도레이가 직접 자사 공장에 윤 대표가 증설하려는 생산 라인을 직접 도입하려면 최소 150억원이 드는 만큼 "비용을 아끼고 위험을 줄이면서도 이익을 내려는 계산이 깔려있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계약기간도 2012년 7월 1일부터 2017년 6월 30일까지 '5년'이었다. 업계에서 보통 1년 단위로 계약을 맺는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으로 긴 기간이다. 또 "계약이 해지되더라도, 협력사는 웅진(現 도레이)이 임가공한 제품과 동일한 제품을 3년 동안 생산 및 판매할 수 없다"는 노예계약에 가까운 내용이 적시돼, 윤 대표는 망설였다.

그러나 당시 공장에 화재가 나기도 했고, 생산 라인 설비를 마치려면 자금이 필요했던 윤 대표는 "라인이 완성되는대로 임가공 물량을 주겠다"는 도레이를 믿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20억도 결코 적은 돈이 아니지만 지난 수년간 도레이와 거래를 잘 해오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대기업의 안정적인 일감도 받을 수 있었기에 결국 2012년 초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선급금은 생산라인의 완전 가동 준비가 되고 도레이가 임가공 물량을 주기로 한(2013년 1월)부터 6개월 뒤인 같은 해 7월부터 24개월간 선급금을 분할 상환키로 했다.

추가 설비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완성된 설비에서 도레이는 자사 신소재 등 신제품 출시 전 각종 실험을 하기도 했다.

모든 준비를 끝낸 윤 대표는 도레이로부터 물량 공급을 기다렸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약속한 임가공 물량은 오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려봐라"며 차일피일 미루던 도레이 관계자들은 점점 윤 대표와의 접촉도, 전화도 피했다. 어렵게 연락이 닿아도 "회사의 방침이고 나는 부품이라 아무것도 모른다"며 관계자들은 입을 닫았다.


약속한 물량 대신, 선급금 변제 기간이 다가왔다. 점점 피가 말라가던 윤 대표는 자신의 자금 40억원과 20억원을 받아 만든 생산 라인에서 어떤 결과물도 내지 못하자 결국 2014년 2월 기업회생 신청했다. 그러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도레이는 바로 윤 대표와 계약을 해지했다.

도레이의 갑질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윤 대표는 기업회생이 들어간 상황에서 선급금 반환 명목으로 "2014년 8월부터 지난 4월까지 21개월동안 매달 약 3500만원씩 불법으로 뜯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회사가 무너져가는 상황에서, 도레이가 다른 채권자들 모르게 불법 추심을 하면서도 이같은 채무 변제에 대한 어떠한 확인서도 공식적으로 써주지 않고 있다"며 울분을 토했다.

도레이케미칼코리아의 선급금 20억과 A사 윤모 대표의 40억을 투자해 만든 경북 구미 섬유공장의 생산라인은 4년째 멈춰있다. (사진=김연지 기자)
◇ 도레이 "투자해달라해서 20억 빌려준 것, 물량 약속은 없었다"…"우리도 피해자"

도레이 측은 황당하고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300억대 매출을 내던 A사가 자금난에 빠지자 "경영자로서, 또 가장으로서 힘겨운 윤 대표의 심정은 이해가지만, 도레이 역시 '피해자'"라는 것이다.

도레이 관계자는 "20억원 선급금을 주게 된 것도 당시 윤 대표가 제조업에 욕심을 내면서 먼저, 우리보고 투자해 줄 것을 요청했다"면서 "우리도 A사가 기존 협력사였고 서로 잘 알았기에 빌려준 것이고, 계약은 맺었지만 일정한 물량을 매달 주겠다는 약속은 전혀 한 바 없다"며 논란을 일축했다.

당시 윤 대표가 증설한 설비는 개인적으로 수입한 장비로, "어떤 제품이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매달 일정 물량을 주겠다고 5년 동안 계약을 맺는 그런 바보가 어딨냐"는 것이다. 또 "계약서에는 아이템 및 생산량 등을 매년 양사간 협의에 의해 재조정한다고 분명히 적시돼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도레이 측은 "2012년부터 2015년 초까지 많지는 않지만 꾸준히 물량을 제공해왔다"며 윤 대표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경제가 여려워지면서 도레이 측도 사정이 나빠져 어쩔 수 없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A사가 회생에 들어가면서 거래처인 우리에게는 단 한 마디 얘기도 없었다"며 "뒤늦게 알게 된 우리도 손실이 크다"고 맞섰다.

또한 윤 대표가 주장하는 불법 추심에 대해서는 "채무 변제는 전혀 없었다"며 상반된 주장을 펼쳤다. 도레이 측은 "2012년 새로 계약을 맺기 전에 2010년부터 맺어오던 기존 거래라인에 물량을 제공하고 임가공료를 우리가 매달 지불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팽팽이 맞섰다.

이어 "우리도 A사의 한 협력사로서, A사가 잘못되는 게 반가울 리 없고, A사 월 매출 300억원에서 우리가 주는 임가공료는 30억~60억원에 불과하다"면서 "많은 거래처였던 곳의 하나였을뿐인데 마치 도레이가 A사를 망하게 된 것처럼 파렴치범으로 몰고 있다"고 반박했다.

한편, 대기업과 4년여간 맞서면서 윤 대표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현재 그에게 남은 것은 '신용불량자'라는 낙인과 뿔뿔히 흩어진 가정, 경매로 넘어간 집뿐이다. 지리하고 외로운 싸움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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