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를 소재로 수십 차례 개인전을 열었던 조 씨가 화투를 손에 쥐었던 건 열 살 무렵.
"병석에 눕기 전 아버지는 한없이 웃기는 분이었다. 열 살쯤 된 내게 화투를 가르쳐주고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의무적으로 아버지와 한 판 쳐야 했다."(동아일보 2003년 5월 21일자 기고 [나의 아버지])
하지만 정작 '고스톱'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조 씨는 어느 순간 화투를 그림의 대상으로 삼았다.
'화투에 정체성이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비, 광, 흑싸리, 청단, 홍단 등 화투 이미지에 우리 사회의 희망을 패러디해 보고 싶었던 거죠.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화투를 좋아한다고 생각을 했고요. 일본의 놀이 기구인데 밤을 새워가며 즐기는 한국인의 이중성이 매우 흥미롭기도 했어요."(한국경제 2012년 6월 18일자 [그림에 빠진 조영남 "일·놀이가 곧 예술"])
그는 화가 김점선과의 대담에서 화투를 그린 이유를 설명하며 사람들의 행태를 할퀴듯 꼬집기도 했다.(동아일보 2003년 7월 11일자 ['양지의 화두' 화가 김점선-조영남의 대담])
"엿 먹으란 거죠. 조선놈들이 화투를 가장 좋아해. 상징적으로 태극기보다 더 좋아해. 없이 못살잖아. 그런데 이 인간들이 화투치는 걸 아직도 창피해 한다고. 이중성이야."
"화투 화가로 기억된다면 더없는 영광"이라고 말했던 조 씨는 그 화투 그림이 '대작(代作)' 논란에 휘말리면서 이젠 검찰 조사를 받게 됐다.
한 무명화가가 조영남 씨의 화투 그림 300여 점을 대신 그렸다고 폭로했기 때문으로, 검찰은 곧바로 조 씨의 소속사와 갤러리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이에 대해 조 씨는 '일부 작품에서 조수의 기술을 빌렸지만 모두가 내 창작품'이라고 주장하며 의혹을 부인했다.
한편 파문이 확산되자 조 씨는 10년째 진행해온 MBC 표준FM '지금은 라디오시대' DJ에서도 잠시 하차키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