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춘할망' 김고은 "어려웠던 윤여정, 나중엔 몰래 챙겨드려"

[노컷 인터뷰 ①] "오열한다고 공감할까? 감정 과잉 경계했다"

영화 '계춘할망' 주연배우 김고은이 12일 오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짧은 단발머리에 반항기 넘치는 고등학생은 사라지고 제법 성숙한 배우가 눈 앞에 앉아 있었다. 강렬한 고아소녀부터 발랄한 대학생까지, 배우 김고은은 요즘 한창 역량 늘이기에 빠져 있다. 아직 '연기파' 배우라고 하기에는 어리지만 충분히 그 잠재력을 증명 중이다.

이번에는 영화 '계춘할망'으로 가슴 따뜻한 휴먼 드라마 장르에 도전했다. 그가 맡은 고등학생 혜지 역은 세상에 의지할 곳도, 희망도 없는 가출 청소년이다. 절망에 가득찬 혜지의 삶은 제주도에 사는 '계춘할망'을 만나면서 변화하기 시작한다.


실제로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김고은은 이번 영화를 통해 가족에 대한 감사함을 많이 깨달았다. 그 중에서도 할머니와는 막역한 사이를 자랑한다.

"같이 살기 때문에 엄청나게 살갑지는 않죠. 서로 간섭하지 않아요. 사실 초반에 제가 학교를 다닐 때 연습을 늦게까지 하고 들어오면 걱정을 너무 많이 하셨었어요. 그런데 앞으로도 저는 그런 생활을 계속해야 하니까 할머니가 스트레스 때문에 병이 나실 것 같더라고요. 충분히 이야기를 나눠서 지금은 밥을 챙겨줘야 된다는 의무감도 거의 사라진 것 같아요."

공감이 없다면 의미가 사라지는 휴먼 드라마 장르의 영화였기 때문에 연기 과정에서 고민도 많았다. 김고은은 영화 '은교'나 '차이나타운' 등에서 느껴보지 못한 또 다른 벽과 마주해야 했다.

"전혀 다른 고민과 다른 종류의 어려움이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감정들을 다뤄야 한다고 생각을 해서 과잉되거나 연기하듯이 보일까봐 신중해져야 했거든요. 후반부에는 정말 윤여정 선생님과 눈만 마주쳐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절제하느라 힘들었습니다."

혜지가 '계춘할망'을 하늘로 떠나 보내는 장면은 특히 고심이 깊었다. 김고은은 가장 실제 감정에 가깝도록 연구를 거듭해 창감독과의 상의 끝에 시나리오를 변경했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오열하면서 가지 말라는 대사를 하는 거였어요. 그런데 배우가 오열을 한다고 감정이 와닿으면 그렇게 하겠지만 많은 생각을 해봤어요. 사실 함께 살면 스스로 계속 생각하면서 끊임없이 시뮬레이션을 했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죽음은 아닐 거예요. 그래서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부터 그 대목이 이해가 안갔어요. 제 생각에는 가시는 길이 편안하게 말동무가 되어주려고 노력할 것 같더라고요."

영화 '계춘할망' 속 배우 김고은과 윤여정. (사진='계춘할망' 스틸컷)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배우 윤여정과의 호흡은 어땠을까. 김고은은 촬영 현장에서 한 시도 윤여정에게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름대로 후배의 몫을 다해왔다.

"처음에야 조심스럽고 어려웠죠. 이미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윤여정 선생님이 하시는 걸 알고 있었고, 시나리오 읽는 날, 후반부에서 많이 울었어요. 감정적인 공유는 충분히 있었던 거죠. 생각해보면 제 시선은 계속 선생님에게 가 있었던 것 같아요. 햇빛이 강하면 우산을 펴드리는게 어떻겠냐고 이야기하거나, 선생님 앉은 자리에 파라솔을 설치하거나, 티나지 않게 많이 했던 걸로 기억해요."

연기 고수 윤여정과의 호흡은 또 다른 배움이었다. 수없이 많은 베테랑 선배들과 호흡을 맞춰왔지만 김고은은 조언을 받아 본 일은 많이 없다고 한다.

"함께 호흡하면서 연기가 오고 가는 그 순간이 너무 크고 좋았죠. 그 자체가 큰 희열이었어요. 선배들의 공통점은 연기적인 부분에 대해 조언이 별로 없다는 거예요. 저도 선배가 되면 그렇게 하고 싶어요. 선배 한 마디가 후배한테는 정말 크거든요. 그래서 더 신중한 것 같아요. 저와 같이 연기하다 보면 답답할 수도 있는데 그게 돌이켜 생각해보니까 선배들의 배려이더라고요."

이번에도 김고은은 여지없이 감독을 '괴롭혔다'. 단순히 촬영에만 열심히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도 매번 감독과 이야기를 나눈다고.

"저는 원래 감독님들과 이야기를 많이 해요. 창감독님도 그랬고, 예외는 없어요. 프리 프로덕션 단계가 제일 치열한 것 같아요. 현장에서는 감정만 생각을 하게끔 하려고 거의 감독님 사무실을 제 집 드나들 듯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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