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 자금지원 방안으로 '자본확충펀드'가 유력한 대안으로 부상했다. 발권력을 동원하되 '국민손실 최소화'라는 중앙은행 원칙에 그나마 부합하는 방안으로 한은이 보고 있는데다 과거 선례도 있기 때문이다.
자본확충펀드는 사실상 증발하고 없어지는 출자 방식과 달리 한은이 대출방식으로 돈을 지원하기 때문에 회수가 가능하다. 물론 이 방식도 정부의 담보 제공 여부 등 구체화 과정에서 논란의 여지는 남아있다.
한은은 자본확충펀드의 경우 자금 회수로 국민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방안으로 보고있다. 문제는 한국은행이 발권력 동원의 전제로 내세워 온 '국민적 합의', 또는 '사회적 공감'을 어떻게 검증 받을 것이냐 하는 점이다.
한은 윤면식 부총재보는 지난달 29일 통화신용정책보고서 브리핑 과정에서 발권력을 동원하려면 "'국민적 합의' 또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사회적 합의를 검증하는 현실적인 방안은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를 활용하는 것이다.
이 경우 한은이 각 당을 방문해 설명하는 형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주열 총재가 직접 당 대표를 면담하고 발권력 동원의 필요성과 방법, 절차, 국민손실 최소화 대책 등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국책은행 자본확충 논의와 함께 '국민적 합의'의 요건을 충족할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한편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지난 2일(현지시각)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참석을 위해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방문한 자리에서 발권력 동원의 전제로 한은이 제시한 '사회적 합의'나 '국민적 공감대'에 대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언급했다.
한은의 주장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다. 이는 발권력의 경우 중앙은행 고유권한으로 7명의 금융통화위원 의결만으로 가능한데 그런 전제조건이 왜 필요하냐는 의미다.
그러나 한은은 국민 부담으로 돌아가는 발권력을 국민의 대표권이 없는 7명의 금융통화위원이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발권력과 더불어 국민의 곳간인 재정은 국회가 예산 심의, 집행, 결산의 세 과정을 통해 감시를 받는다. 똑같이 국민부담인 발권력 또한 엄격히 집행돼야 하고, 재정에 준하는 국민적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한은의 논리이고, 중앙은행의 공통된 원칙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