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밖 삼성광고·도로엔 현대차…라오스에 부는 한국바람

중-미일 틈새서 맞춤원조와 성장경험으로 新시장 개척

◇ 공항 나오니 삼성 광고, 길에는 현대차...라오스에 부는 '한국 바람'

라오스 비엔티안 공항에 내리면 가장 먼저 보이는 대형 옥외광고가 삼성의 갤럭시 광고다. 도로에는 현대차가 많이 보인다. (사진=장규석 기자)
인천공항에서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으로 가는 진에어 직항로는 평일인데도 거의 만석이었다. 일본에는 한 편도 없는 라오스 직항로가 이미 한국에서는 매일 두 편씩 다니고 있다.

그렇게 비엔티안 공항에 쏟아진 한국인들을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삼성 갤럭시 S7의 거대한 옥외 광고판이다. 이어 차를 타려고 도로에 나오면 길에 다니는 상당수 차량은 신차, 중고차 할 것 없이 현대기아차다. 그간 일본 도요타가 차지하고 있던 라오스 시장을 파고들어, 이제는 거의 대등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또, 라오스인들의 가장 주요한 교통수단인 오토바이는 대다수가 한국계 라오스 현지기업인 코라오(KOLAO)가 생산한 것이다. 코라오는 오토바이와 자동차 조립, 제조업은 물론, 금융업과 레저업 등에도 진출한 라오스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런가하면 비엔티안에서 가장 큰 야시장이 열리는 메콩강변의 짜우아누웡 공원에는 라오스의 민족영웅 짜우아누웡 동상이 서있다. 짜우는 ‘왕’이라는 뜻으로 짜우아누웡은 라오스 역사상 드물게 태국 정벌에 나섰던 왕이다.

라오스 민족영웅 짜우아누웡의 동상(좌)과 한국이 원조로 건설된 메콩강 정비사업을 기념하는 비석(우) (사진=장규석 기자)
지금도 칼을 차고 메콩강 맞은편의 태국을 바라보고 있는 라오스 민족영웅 짜우아누웡 동상의 기초를 놓은 것이 바로 우리나라다.

이 지역은 과거 해마다 제방을 범람한 물난리로 엉망이 되곤 했던 곳이었다. 지난 2007년 한국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3700만달러를 차관 형식으로 받아, 우리 기업이 제방을 쌓고, 한강과 같은 고수부지와 공원, 강변도로를 만들었다.

새로 조성된 공원에는 민족 영웅의 동상이 들어섰고, 야시장이 활성화 돼 주요한 관광자원이 됐다. 또, 범람우려가 없어진 강변 주변은 쓸모없는 땅에서 금싸라기 땅으로 변모해, 개발사업이 한창 벌어지고 있다.

실라봉 꼿파이혼(61) 비엔티안 시장은 “메콩강변 정비사업 이후 한국의 기술력을 높이 평가하게 됐다”며 “메콩강 정비 2단계 사업도 현재 한국 정부와 함께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라오스에는 이미 ‘코리아’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었다.

◇ 라오스에 드리우는 거대한 중국의 그림자

하지만 조금만 더 있다보면 라오스에서는 또 다른 그림이 보인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중국의 거대한 그림자다.

중국이 짓고 잇는 라오스 최고층 건물 (사진=장규석 기자)
비엔티안 중심가에 있는 개선문(빠뚜싸이; Patuxai)에서 보면 북동쪽으로 독보적으로 높은 빌딩이 올라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중국 자본이 투입된 38층짜리 복합 쇼핑몰이다. 라오스의 신성한 불탑 ‘파탓루앙’(45m)보다 높은 고층건물을 지을 수 없도록 한 국내법이 개정되자마자 건설이 시작됐다.

이 밖에도 비엔티안 곳곳에 대규모 건설사업이 벌어지는 현장에는 여지없이 중국어 간판이 걸려있었다. 중국 자본이 대거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가이드를 맡은 라오스 현지교민 김민재 씨(31)는 “5년 전부터 확실히 중국 자본이 많이 들어오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중국 윈난성과 라오스 비엔티엔을 연결하는 고속철 건설 사업도 시작했다. 고속철 사업에 들어가는 사업비만 우리 돈으로 8조원이 넘는데, 철도 운영을 중국측이 맡을 예정이다. 김 씨는 “철도 건설로 베어내는 삼림자원(벌채권)도 중국에 넘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라오스는 바다가 없는 내륙으로 인도차이나 반도의 한복판에 자리를 잡고 있다. 중국과 베트남,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등 5개 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중국이 전세계로 진출하기 위한 거대 계획,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의 남방 통로상에 있다.

정치적으로도 공산당이 일당독재를 하는 사회주의 국가로 중국과 매우 유사한 정치체제를 갖고 있다.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 3일 최근 취임한 분냥 보라치트 라오스 대통령과 만나 ‘운명공동체‘라는 말로 유대관계를 강조하기도 했다.

◇ 中 견제.. 라오스에 보따리 푸는 美日

이런 중국의 행보를 견제하는 미국과 일본도 잰걸음이다. 일본은 라오스에 가장 많은 원조를 하는 나라로 오랫동안 라오스에 공을 들여왔다.

라오스 비엔티안 공항이 일본의 원조로 건설됐다는 것을 알리고 있는 기념비(좌)와 일본의 원조로 투입된 라오스의 시내버스(우) (사진=장규석 기자)
2009년 이후 5년 동안 일본의 원조지원 실적은 4억4300만 달러로, 2위와 3위 원조국인 호주(2억1900만 달러)와 한국(1억3700만 달러)의 원조를 합친 것보다 더 많다.

실제로 비엔티안 시내를 달리는 시내버스도 일본이 기증한 것이고, 심지어 비엔티안 국제공항도 일본이 원조한 것이다. 일본은 라오스인들의 실생활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은 물론이고 교육과 농업 부문에도 상당한 지원을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4일 기시다 외무상이 라오스를 방문해 수백억원의 추가 지원과 함께 라오스 공무원을 대상으로 일본 유학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의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더불어 미국도 지난 1월 존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라오스를 직접 방문해, 베트남전 당시 라오스 접경지역에 살포된 폭발물 제거 프로그램에 나서겠다고 밝히며 라오스와의 관계개선에 나섰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오는 9월에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라오스를 방문할 예정이다.

이와함께 반중 성향을 갖고 있으면서 정치적으로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베트남이나 경제적으로 라오스를 지배하다시피하고 있는 태국도 라오스가 지나치게 중국에 치우치는 것을 견제하고 있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중앙에 위치한 라오스를 두고 미일-중 강대국과 태국, 베트남 등 주변국들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라오스에서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을 설정하는 것이 한층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 강대국 각축 속.. 한국이 라오스를 여는 2개의 열쇠

라오스 국가경제연구소(NERI) 리버 라보아파오 소장은 라오스 사람들에게 "한국을 보라"고 말한다. 한국의 고도성장 경험은 라오스가 본받고 싶은 소중한 자산이다. (사진=장규석 기자)
한국이 라오스라는 새로운 시장을 열기 위한 열쇠 중 하나는 ‘고도성장의 경험’이다. 라오스도 2010년 이후 줄곧 7~8%가 넘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라오스는 불과 50년도 안 되는 시간에 최빈국에서 선진국의 문턱까지 압축성장을 한 한국의 모델을 본받고 싶어 한다.

라오스 국가경제연구소(NERI) 리버 라보아파오 소장은 “196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가전이나 자동차 부문에서 후진국이었던 한국이 지금은 미국, 일본과 대응하게 경쟁하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경이롭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라보아파오 소장은 “라오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누누이 ‘한국을 보라(Look at Korea)’고 강조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등 다른 나라는 무형의 지식 원조 프로그램이 없다”며, 한국의 성장경험을 토대로 조언을 해주는 지식공유사업(KSP)에 대해서도 높은 평가를 내렸다.

지난 2014년까지 모두 56개의 주제에 대해 자문을 제공했고, 지난해와 올해에는 4개의 정책자문 주제를 정해 지난 4일 라오스 현지에서 최종 보고회가 열렸다. 인프라 개발, 산업화 전략, 지식기반경제 전략 등은 물론, 투자유치 전략과 교통부문 녹색성장, 농업연구개발 활성화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공동연구가 이뤄졌다.

이와함께 앞서 언급한 메콩강 정비사업과 같은 효과성 높은 원조 사업으로 우리나라의 대외 이미지를 높이는 사업도 의미가 있다. 라오스에 대한 대외경제협력기금 사업은 불과 12건에 불과하지만, 선택과 집중으로 사업의 성공도나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메콩강 정비사업으로 비엔티안시의 명물이 된 야시장 전경 (사진=장규석 기자)
앞서 언급한 비엔티안시 메콩강변 정비사업은 1단계 사업의 성공으로 2단계 공사는 물론, 남부지역인 참파삭 주의 메콩강변 종합관리사업도 우리 기업이 맡게 됐다.

북부지역의 중심지인 루앙 프라방에 우리가 직접 국립대학인 수파노봉 대학을 건립해 지원한 것도 큰 의미가 있다. 처음에는 정부의 유상차관 지원 형식으로 EDCF 2300만 달러가 건설 자금으로 투입됐고 이후 무상지원인 코이카(KOICA)의 역량개발 사업으로 연결돼,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사업이 10년 넘게 꾸준히 관리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수파노봉대 캄파이 시사반 총장은 “2008년 이후 지금까지 5800여명의 졸업생이 배출돼, 중앙과 지방정부, 은행, 세관, 수력발전댐 등에 취업을 했다”며 “누구보다 한국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높은 인적자원들이 라오스 요소요소에 배치돼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만의 고도성장 경험과 10년여에 걸친 원조사업의 성과야말로 강대국의 주도권 경쟁 속에서 우리가 새로운 시장을 열어젖히고, 그곳에 코리아 바람이 불도록 하는 주요한 열쇠다.

권오형 코트라 비엔티안관장은 “라오스는 인프라가 취약해 앞으로 인프라를 확대하기 위해 정부가 지속적으로 노력을 하고 있어 규모는 작지만 알짜 시장”이라며 “현재 개방의 문호를 넓히고 있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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