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치보던 유통업계 하나둘씩 조치 취해... 여론 심상치 않다.
대형마트 등 유통업계가 옥시의 제품을 주요 진열대에서 내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2일부터이다. 이날 옥시레킷벤키저 한국 대표인 아타 사프달 대표는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관련된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사과를 했다.
하지만 알맹이 없는 기자회견에 피해자는 물론 국민들은 더욱 공분했다. "옥시가 잘못을 인정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불매운동은 더욱 번지는 계기가 됐다.
롯데마트와 이마트, 홈플러스는 고객 항의가 빗발치자 노출이 많은 끝부분 매대(엔드매대)에서 옥시 제품을 뺐다. 할인행사와 각종 증정품 행사도 중단하고 최소한의 판매를 하기로 했다.
소극적 판매 전략을 택한 대형마트와는 달리 백화점과 소셜커머스 업체들은 아예 제품을 내려 파격적으로 불매운동에 동참했다. 옥시는 당분간 전혀 안 팔겠다는 것.
롯데백화점, 신세계백화점, 현대백화점, AK백화점 등은 이르면 5일부터 옥시 제품을 매대에서 완전히 내리기로 결정했다.
온라인몰도 속속 동참했다. 소셜커머스 업체 중 가장 먼저 위메프가 3일에 판매 중단 결정을 내렸으며, 여론을 주시하던 티몬과 쿠팡도 4일 오전과 오후 각각 판매 중단 입장을 밝혔다. 이어 G마켓과 옥션 등 오픈마켓도 옥시 제품은 배송하지 않겠다고 가세했다.
온라인몰에서 표백제와 제습제, 섬유유연제, 손세정제 등 각종 생활용품이 매출에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인 만큼 업체들이 감수해야 할 손해도 상당할 수 밖에 없다.
불매운동을 동참한 이유에 대해 소셜커머스 업체 관계자는 "매출에 타격은 있겠지만 그런 큰 잘못을 인정한 기업의 제품을 파는 것은 도의가 아니라고 판단해 자체 회의 끝에 제품을 내리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들이 옥시 제품 대신 타사의 대체품을 찾으면서 일부는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티몬 집계에 따르면 전 일주일 대비 4월 18일~5월 1일 동안 옥시의 경쟁사 제품인 슈퍼타이의 매출이 41% 뛰었고, 유한락스 21%, 테크 10%, 다우니 5%, 샤프란 6%로 매출이 올랐다.
◇ 과거 갑질 등 소규모 불매운동과 차원 달라.. 국제적 전개 가능성도
검찰 수사가 막바지로 진행되면서 옥시의 실험결과 조작, 유해상 사전 인지, 의도적인 법인 청산 등 각종 의혹이 밝혀질 것으로 보여 불매운동의 기운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 갑질 사태 등으로 벌어진 불매운동의 경우 수개월~1년 정도의 매출 타격을 입고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매출을 회복했다면 옥시의 경우 양상이 다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오너의 갑질 등으로 불거진 과거 불매운동 이슈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여론이 어디까지 악화될지 알 수 없다.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다국적 기업이 일으킨 전대미문의 사건인 만큼 불매운동이 국제적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당장 피해자 가족들은 옥시가 한국에서 영원히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피해자단체 모임 측은 본사인 레킷벤키져(RB)의 국제적인 불매운동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4일 영국 본사에서 항의를 위해 출국한 피해자단체 대표들이 본사와 어떤 대화를 하느냐에 따라 불매운동 범위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수백여 명의 사망자 및 피해자를 내고도 지난 5년을 침묵했던 가습기 살균제 사태의 전말이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세세하게 알려질 경우 국제적 불매운동으로도 번질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 업계와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소비자단체와 환경단체 등은 오는 9일까지 옥시 제품을 파는 유통업체들의 명단을 공개해 불매운동 압박에 나설 예정이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임은경 사무총장은 "살인 제품이라고 할 정도로 대형 참사가 일어났고, 5년을 끌고 이제야 면피성 사과를 하는 것에 대한 공분이 소비자들을 움직였으며 유통업체들도 발빠르게 조치에 나섰다"면서 "한국은 집단소송이나 징벌제 손해배상 제도 등이 갖춰져 있지 않아 다국적 기업이 쉽게보고 접근하는 시장이었던 만큼 이런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