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그 해에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가 설립됐고, 삼성중공업도 이듬해인 1974년에 문을 열었다. 앞서 1968년에는 포항제철이, 1972년에는 울산석유화학단지가 건립돼 중화학공업 공업 정책의 기반이 마련됐다.
이후 수출량이 늘어나면서 한진해운이 1977년에 설립된다. 조양호 회장의 부친인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가 “해운을 발전시켜 수출 입국을 세우는데 힘써달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권유를 받고 창업을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정부의 모든 자금과 역량이 투입되면서 중화학공업은 급성장했다.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이 내걸었던 수출 100억달러 달성 목표는 불과 4년 뒤인 1977년에 조기 달성됐고, 1979년 중화학공업화율은 50%를 넘게 된다.
중화학공업을 통한 수출 중심의 산업구조가 이때 형성됐고, 이 과정에서 현대, 삼성, 럭키금성(LG), 선경(SK), 한진 등 재벌기업이 성장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집중 육성한 철강과 조선, 전자, 석유화학, 기계 등의 업종은 '한강의 기적'을 일군 원동력이 됐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우리나라의 기간산업으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그러나 중화학공업화 선언 이후 40여년이 지나면서 이들 기간산업의 성장동력은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특히 조선업의 경우는 지난해에만 8조5천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으며, 국책은행을 통한 정부의 자금 지원을 통해 연명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는 부채비율이 4000%를 넘었다.
해운업도 현대상선이 지난해 말 기준으로 부채가 5조6600억원에 부채비율은 2000%에 달했고, 한진해운은 부채가 6조 6,400억 원에 부채 비율이 800%가 넘었다. 영업이익률은 마이너스로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내는 상황에 처했다.
철강이나 석유화학은 이들에 비해서는 그나마 상황이 낫다고 하지만, 합금철의 경우는 수요부진으로 2014년 이후 영업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석유화학 분야에는 합섬원료 업체들이 영업적자로 고전 중이다. 게다가 이들 업종의 공급과잉 문제는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여 부실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현대상선은 5년 전 3만2천원 정도하던 주가가 2000원으로 곤두박질 쳤고, 현재는 거래정지 상태다. 한진해운도 3만원 가까이 올랐던 주가가 5년만에 1900원으로 추락했다. 블루칩으로 여겨지던 기간산업 주식들이 이른바 ‘아이스크림 주식’으로 전락한 것이다.
시가총액으로도 이들 '조선 빅3'와 '해운 빅2'의 시가총액은 5년 4개월만에 45조원이 증발했다. ‘조선 빅3’는 시가총액이 2010년말 50조1371억원에서 12조4,515억원으로 75%가 줄었고, '해운 빅2'는 8조4025억원에서 9250억원으로 시총이 89%나 증발했다.
이필상 서울대 초빙교수는 “대기업과 수출을 중심으로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조선, 철강 등의 주력 산업이 무너지면서 성장동력이 꺼지고 고용창출 능력을 잃고 있다”며 “지금의 산업구조를 개혁해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이를 위해 정부가 연구개발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기초를 만들어놓은 중화학 수출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가 힘을 잃어가면서, 이제는 기존 산업구조에서 탈피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하는 임무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맡겨진 셈이다.
박근혜 정부가 이제 40년이 지나 한계를 노출하고 있는 기존 산업구조를 개편할 효과적인 방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정부는 28일 신산업 투자 촉진과 구조조정을 통한 산업개혁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