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 제품 안 팝니다'…약사들도 '뿔났다'

"시민에게 알려야"…불매운동 전국 확산 조짐

'우리 약국에서는 옥시 제품 불매운동에 동참해 옥시 제품을 판매하지 않습니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 약국 앞에 붙은 안내문이다.

이 약국 약사 A 씨는 "불매운동을 벌이는 약사들이 점차 늘어나는 분위기"라며 "약사 이전에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피해자들이 거대한 공룡기업에 대항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려고 동참했다"고 말했다.

불매운동에 동참한 또 다른 약사 김모(36) 씨는 "옥시에서 해명한 내용을 들어보니 변명으로 일관해 그 태도가 몹시 불쾌해 함께하게 됐다"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김 약사는 이어 "옥시 제품의 이름도 붙여 놨는데 의외로 해당 제품이 옥시 제품인 줄 모르는 시민이 많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해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옥시레킷벤키저(옥시)를 향한 분노가 식을 줄 모른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과 시민단체가 옥시 등 가해 기업들에 대한 불매운동을 공식 선언한 데 이어 제품을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약사들에게도 불매운동이 퍼졌다.

이 같은 움직임은 전국적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울산 울주군에 있는 한 약국에도 옥시 불매운동에 동참하는 안내문이 붙었다.

이 약국 약사 최모 씨는 '옥시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과 제대로 된 원인 규명과 피해보상에 나설 때까지 제품 불매운동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개비스콘, 스트렙실은 옥시 제품이라 당분간 취급하지 않습니다'라는 안내문을 붙였다.

최 약사는 "기본적으로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맞지만, 국민 건강에 위해를 줬으면 책임을 지거나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옥시는 회피하는 데 급급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약사로서 의사 표시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간단한 것이 옥시의 제품을 판매하지 않는 것"이라며 "울산에서는 현재 30여 곳 정도의 약국이 불매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전 두레약국 정문에도 '옥시 제품 불매운동에 참여하며 개비스콘과 스트렙실을 판매하지 않습니다'는 게시문이 붙었다.

약국을 운영하는 오 약사는 "화학약품이나 의약품을 만드는 회사는 스스로 제품의 안전성을 증명해야 하는데, 사람이 죽고 아픈 상황이 벌어졌는데 자신의 책임을 은폐하고 부인하는 회사가 만든 제품은 팔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전 대성당약국 박진희 약사도 전날 약국 정문에 '개비스콘과 스트렙실을 팔지 않는다'는 게시문을 붙였다.


박 약사는 스트렙실을 찾는 손님들에게 대체 약품을 쓸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는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 옥시 측의 책임을 묻기 위해 약국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관련 의약품 불매운동에 나서게 됐다"며 "대전 시내 약국 10여 곳 정도가 참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부산시약사회도 26일 옥시가 피해자 보상과 사과를 하지 않으면 시약사회 차원에서 단체 불매운동에 동참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시약사회는 "현재 사회적 논란의 쟁점이 되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옥시의 대처는 미흡함을 넘어 분노를 일으키게 한다"며 "국민 건강과 위생에 밀접하게 연관된 제품은 의약품과 마찬가지로 효과 이전에 안전성 확보가 최우선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약사회는 "국민 건강을 지켜야 할 우리는 옥시에서 생산돼 약국에 공급되는 모든 종류의 의약품 안정성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의심하지 않을 수 없으며, 현재 자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선 약국들의 옥시 제품 불매운동에 깊이 공감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최정국 부산시약사회장은 "옥시의 매출 4천600억원 중 의약품의 수입 비중은 크지 않지만, 약사들이 작은 몸짓이나마 피해자들을 위해 옥시를 압박해보자는 생각에 이렇게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온라인에서도 옥시를 향한 비난의 화살은 쏟아지고 있다.

네이버 아이디 'zzuz****'은 "저 역시 피해자인 듯합니다. 20대 초반에 2년 동안 가습기 살균제를 썼고 당시 천식에 시달리며 몇 년을 살았습니다. 지금도 기관지나 폐가 좋지 않아 호흡기 질환에 시달리며 살고 있습니다. 제발 그냥 지나치지 말아 주세요"라고 썼다.

같은 포털 'litm****'은 "가습기 살균제가 아니라 가습기 사형제를 만들었다"는 글을, 'shim****'은 "옥시는 살인기업이다. (유해성을) 알면서 만들어 판매한 것이 확실하니 살인죄 적용해라"고 비판했다.

누리꾼들은 5년 전 불거진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이제야 수사한다면서 당국의 '뒷북' 대책도 지적했다.

네이버 아이디 'orio****'는 "몇 년을 나 몰라라 하더니 인제 와서 이렇게 파헤치는 국가가 더 기가 막히다"고 지적했다.

같은 포털의 'hjpa****'는 "지금까지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을 겪은 피해자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찢어지네요. 원인 규명과 책임을 확실히 물어 앞으로 또 다른 피해자들이 나오지 않았으면 합니다. 잘 해결되어 가족을 잃으신 많은 분께 작게나마 위안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는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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